'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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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흥얼거리는 애들 노래 중에 '어른들은 몰라요'란 노래가 있다.

같은 제목의 영화에 삽입된 노래로 당시엔 꽤 유명한 노래였지만
영화는 당시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알려주듯 초등학생인 내가
보기에도 별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게 잊지못할 사연이 있는 영화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 어머니는 신문을 유심히 보다가
급하게 옷을 차려 입고 누나와 나를 데리고 극장에 갔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듯 본 영화가 바로 '어른들은 몰라요'였다.
일단 외출한다는 데에 큰 의의를 두었던 우리 남매는
극장 앞에서 당시 부의 상징인 바나나를 사먹고 영화를 봤다.
앞서 말한 대로 영화는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별로였다.

그후 ... 그렇게 그 사건은 오래도록 잊혀졌다.

나는 자랐고 대학에 갔고 직장에 갔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육아에 관심이 많은 아내 덕에 육아에 관한 책들을 읽고
좋은 아빠,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소망이 한참 생길 즈음...
어느날 나는 문득 그 노랠 흥얼거렸고 그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번엔 무료했던 영화보단, 그 날의 어머니가 자꾸 떠올랐다.

어머니는 객관적으로는 어느 부모처럼 부족한 점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지금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적어도 내겐 존경의 대상이자 사랑의 표상이다.

어머니는 그날 신문에서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영화의 타이틀을 보고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려는 마음으로 우리를 데리고 극장에 갔던 듯 하다.

나이가 들어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나니 나는 그게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난 항상 육아를 떠올리면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아이의 나쁜 버릇을 교정하고
아이가 바른 길로 자랄 수 있도록 훈육하는... 그런 생각만을 막연히 했는데..
어머니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미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았다는 게 난 너무 놀랍다.

어머니의 삽십대.. 나완 다르게 관계에서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
성숙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자주 압도당한다.

지금도 나는 내가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이가 커서 나에게 그래도 막연한 고마움을 갖는 부모로 남을 수 있을까..
가끔 조바심이 난다. 자신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본 '어른들은 몰라요'를 떠올린다.
.. 매순간 좀더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겠다. 그게 어머니의 교훈이다.
2011/03/18 22:52 2011/03/18 2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