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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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어제도 주말에 집정리를 하며 아내와 함께 잠깐 봤다.

다른 가수들은 경쟁에서 쳐지지 않으려 나름의 노력과 새로운 무대를 선보인데 반해 김건모는 비교적 정체된 무대와 엉뚱한 립스틱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결국 그가 7위에 올랐다. 사람들은 당황했고 김제동은 기회를 달라고 제작진에 요청했으며 제작진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김건모는 재도전하기로 한다.

김건모는 최근 몇년 사이, 아니 엄밀히 말하면 김창환 사단과 결별 이후 점점 하락세를 겪고 있다. 무릎팍에 나온 연예인 중 가장 이미지 회복이 안 된 사람으로 김건모를 꼽을 정도니... 방송에선 버라이어티에서도 웃기지 못하고 노래도 한량처럼 부르는 그에게 관심이 점점 떨어지는 듯 하다.

나는 솔직히 어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더 싫어졌다. 버라이어티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혹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루저'처럼 보여서일까. 일례로 이소라는 자기 기분에 따라 정작 중요한 스케줄이 있어도 게임에 몰두하고, 자주 자신의 기분에 따라 방송을 거부하거나 찡그린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김건모는 그의 원래 성격 때문인지(나는 그렇다고 보지만) 다른 가수들처럼 경쟁에 혼신의 힘을 쏟지 않는다.

현대는 자기개발의 시대다.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7habit이니 아웃라이어니 블루오션이니 하는 자기개발 서적을 읽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며 경쟁 구도에 들어섰을 때 그간 갈고 있던 실력의 120% 발휘하기 위해 항시 긴장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트렌드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듯 하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몇몇 가수들은 이런 경쟁과 서바이벌, 끊임없는 자신의 혁신... 이것들과 친숙하지 않다는 거다. 대중가수는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고 대중의 박수를 먹고 산다고 말하지만, 가수는 상업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술적인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들은 자기관리를 잘하고 대인관계에 친숙한 직장인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선놀음을 하거나 밤낮을 바꿔 생활하고 때론 성격이 까칠한 모습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난 내가 아는 많은 훌륭한 가수들이 카메라를 항시 들이댄다면 다들 인격적으로, 자기 관리 차원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리라 생각한다.

그들 중 다수는 자주 목상태가 최상이 아닐거고, 매번 경쟁 때마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난 가수가 그럴 필요가 있냐는 생각마저 든다. 최고의 가수들을 모아서 매번 서바이벌 구도를 만들면 그들의 경쟁심을 유발하여 더 뛰어나고 더 멋진 공연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너무나 서구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이다.

내가 아는 이소라는 폐쇄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김건모는 천성적으로 방송에 대한 긴장감이 없는 듯 보인다. 얼마전 놀러와에 나온 이상은이나 강산에는 어떤가.(놀러와 사상 나는 그 방송이 가장 재미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들이 모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음악을 가수의 삶과 분리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방송에서 보여지는 김건모와는 별개로.. 그의 음악이 좋다. 그는 훌륭한 가수다. 하지만 버라이어티는 그를 자꾸 불편한 존재, 게으르고 진지하지 않은..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가수로 비춰준다. 난.. 그게 심히 불쾌하다.

그런 얘길 할 수도 있다. 가수가 그런 서버이벌 프로에 안 나오면 되지 않냐고. 딴따라 주제에 지네들이 무슨 예술가냐고, 대중과 호흡하지 않는 가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가수가 버라이어티에 나오면 그 옷에 몸을 잘 맞춰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한국의 모든 가수가 이제는 대중의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 이른바 '대중가수'여야 하는 현재가 안타깝다. 예전에 한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연기도 하고 방송활동도 열심히 한다는 하소연을 하는 걸 봤다. 황금시간대에 가수를 불렀을 때 거절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들이 방송활동 없이 과연 자신의 음악을 몇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교계에서는 목사도 자비량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가끔 하는데 가수도 이꼴저꼴 안보려면 자기가 돈벌어서 음악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조규찬은 몇 개의 음반을 낼 만한 곡을 만들어놨음에도 1장의 새음반을 내기까지 5년이 걸렸다고 했다. 음반시장의 악화된 환경 때문이다. 그는 음반 한 장에 곡을 추리고 추려서 담았단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은 이제 더이상 상업적으로 음악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이런 음반시장과 가수의 현주소,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 속 한국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이런 총체적 불쾌감 속에 김건모는 내 모습, 내 주변의 사회성, 무한경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니 적응하지 않는 소중한 지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별로다. 담배를 씹는 기분이다.
2011/03/21 20:29 2011/03/21 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