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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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진영의 신앙적 고민들이 매체를 타면서 개신교 내에서도 회자되는 일이 잦다. 이에 대한 내 심정은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불편하다. 아마도 내 주변 개신교인들은 나의 불편함을 더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해서 내 불편함의 실체를 조금은 풀어낼까 한다.

솔직히 나는 가수이자 JYP의 대표인 박진영의 갑작스러운 '인생의 궤도 수정', 이른바 기독교로의 회심 조짐에 대한 우려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매체에서 언급한 대로 3년간의 공부 내용 중에 창조, 진화, 그리고 지적설계 이론을 언급한 대목에서 그리 긍정적인 생각을 갖질 못했다.(대체로 창조-진화 논쟁에서 현재까지는 기독교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지적설계 이론이 과학의 탈을 쓴 신학으로 치부되고 있다.)

 

물론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런 거다. 나는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 궤도를 수정할 때, 반대 극단으로 달려가는 현상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회귀현상이 뒤따른다고 보는 편이다. 하나의 유행이나 기호가 아닌, 종교성으로 대변되는 한 인간의 가치관, 세계관이 변할 때는 사실 스스로도 충분한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더라는 사실이다. 그 변화에서 자신의 이성과 정서, 그리고 습관 모두가 어느 정도 합일점에 이르렀을 때 변화된 가치관, 종교관이 어떤 일상적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매체에서 보여준 박진영의 돌발(의도된) 발언은, 적어도 내겐 꽤나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발언들이 자신 새앨범의 컨텐츠와 함께 공개되었을 때 솔직히 우려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의 신앙적 고민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인데 그의 말들이 편집되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순식간에 기독교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대중적인 복음주의 개신교권에서 확장, 증폭되고 소비될 조짐마저 보였다. 그에게조차 아직 잘 맞지 않는 옷을 개신교가 서둘러 반기며 오히려 적극적인 홍보(전도)에 동원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대체로 한국 개신교권은 이런 대형 스타에 의존하는 몹쓸 습관이 체화되어 있다. 대형교회 목사들의 탁월한 말주변(설교)에 현혹되고 대형교회에 모여들고 대규모 찬양집회, 대형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다. 물론, 나또한 그런 배경에서 자라왔다. 보수 개신교권에 국한된 얘기만도 아니다. 한국 복음주의권도 1세대 몇몇 소수의 목회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결국 2, 3세대의 리더들은 현재 진보진영의 정치권과 비슷하게 그 리더십이 전수되지 못하는 느낌도 받는다.

 

우리가 박진영이라는 유명 가수의 변화를 반길 경우, 이른바 JYP라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대표를 개신교의 홍보 수단으로 적극 수용할 경우, 나는 그들의 진정 어린 어떤 기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가 박진영 본인의 신앙마저 망치는 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도 본다. 솔직히 우리는 과거에도 '대도' 조세형이나 '보스' 조양은, 전병욱, 오정현에 '환호하여' 그들의 신앙이 무르익어서 열매를 맺기도 전에 더욱 이전 삶의 형태로 복귀, 질주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나는 그런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개신교 안에 없다는 점도 불편하다.

 

매체에서 보여준 그의 신앙적 고민. 나는 그 진정성을 믿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박진영이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이 상당히 우려스럽다. 내적 고민들이 깊어지기 전에 대형 자본에 길들여진 상품(음반)을 들고 기독교에 관한 이성적 동의 수준의 메시지를 '동일한 플랫폼'(이른바 뮤직 엔터테인먼트, 혹은 지상파 연예 프로그램) 위에 올려 놓은 상황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물론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도 흔들리고 그가 회심의 증거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대중적 개신교계도 함께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명인의 신앙은 더 내재화되고 더 그 가치가 축소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수는 대중이 모이면 불편한 이야기로 그들을 흩으셨다. 나는 그가 매체에 자신의 상품과 함께 전달되는 말로써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일상이 변화되는 소소한 경험들 속에서 신앙이 싹트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신앙이 매스미디어를 통해서가 아닌, 무대 밖에서 조금씩 열매 맺길 기대한다. 그 때까지. 그의 신앙이 그의 몸에 잘 맞을 때까지 개신교는 잠잠히 그의 곁을 그저 지켜주기를 기대한다. 섣불리 먼저 박수치기 보다는, 함께 걸어주기를 기대한다. 내 생각은 그러하다.

2013/09/15 23:27 2013/09/15 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