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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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게다가 정작 크고 중요한 일은 회사에서 더 많았습니다만. 오늘 제 고민은 이 글을 쓸까 말까에 관한 것으로 압축됩니다. 처음엔 이슈를 잘 모른 상태에서 소소한 반응을 보였을 뿐인데 정작 제 페친이 두 갈래로 나뉘어 '좋아요' 진영을 구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뭐랄까요 중재 욕구랄까요. 혹은 고질병이 도졌다고나 할까요. 어느덧 아이 목욕을 씻기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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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렇습니다. 지강유철님이 본인의 담벼락에 <1993>이란 제목의 짧은 단문을 올렸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최근 강사 섭외를 위해 알아보던 중 연애 문제에 관한 강의로 주가가 폭등하는 유명 강사인 김지윤님에 대해서도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 분의 달변과 과도한 스케줄 관리를 위해 비서를 둔 것이 맘에 걸리셨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강의를 보시면서도 위기감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기독교 지성과 기독교 인권, 한국교회 성차별 현실"에 있어서 책임을 느껴야 할 주변 지식인이 침묵하는 형태에 대해서도 의아함을 느끼셨다는 표현에서 상기 부분에서 비판점을 발견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강유철님은 자신이 1993년에 지켜본 '한 분'과 김지윤님이 오버랩되는 경험을 하였다고 토로합니다. 그 분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셨으니 누구인는 명확하지 않으나 현재 상한가의 김지윤 간사님의 수직 상승에 대한 팬덤현상, 무비판적 지지와 관련하여 그 분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이 못내 걱정스러우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말은 1993년의 그 분의 결말이 좋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김지윤님도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소리를 했다는 의도이겠지요.

이에 대해 김지윤 간사님도 본인의 담벼락에 그 글에 대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컨텐츠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시겠다는 말을 하셨지만 "차 한잔 마시고 진심어린 대화 한번 나누지 않았으면서 나에 대한 인격적인 공격을 하는것은 비판이 가진 한계 비난과의 경계를 생각하게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고 그 글을 읽고 먹던 식사조차 마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2.
참고로 이 건을 풀어내기 전에, 저의 스탠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만 합니다. 저는 IVF 출신이고 한때 복음과상황(이하 복상) 필진이자 편집위원이었습니다. IVF출신인 김지윤님과도 인맥이 겹치고 복상의 간판 필진이었던 지강유철님과도 그러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지강유철님과 관련된 몇 차례의 논쟁에 뛰어든 바 있고 상당히 많은 부분 지강유철님의 입장을 옹호한 바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IVP에서 출간한 존 스토트의 책에 대한 논쟁에서 그의 입장에 선 바 있습니다. 저는 지강유철님에 비해 나이로는 한참 아래이고 필진으로 복상에서 글을 쓸 때도 그의 글쓰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운 것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것은 저의 인맥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강유철님과 저의 친밀함에 대한 사전 이해를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논란의 핵심 외적으로도 분명 호불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없이 텍스트 비평이 이루어진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의미입니다.)

3.
각설하고, 저는 김지윤님의 강의와 동영상을 어느 정도 보았습니다. 찾아다니면서 보지는 않았고 페친들이 공유하는 것들을 함께 보며 공감도 하고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걱정스러운 지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스스로를 (유사)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곤 하는데 김지윤님의 강의는 남녀 성역할을 어떤 고정된 구조로 상정하고 현실적인 접근들에 집중을 하는 느낌이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로 페미니스트들의 담론은 정작 일반 여성조차 어렵다고 배척을 당하기 일쑤인데 김지윤님의 강의는 여성들, 그리고 여성들과 연애를 잘 해내고픈 남성들에게까지도 긍정적인 '행동교정' 효과를 갖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비슷한 얘기인데 한번은 제가 성역할에 걸맞는 연애학 강의를 배척하는 입장의 책에 완전 꽂힌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이 제 입장과 잘 맞는다 여겨서 주변에도 많이 추천했었지요. 헌데 페친 한분이 그 책을 읽고 비판을 하였습니다. 그 비판의 요지는 간단히 말해, 정작 본인은 연애를 시작하지조차 못하고 있는데 성역할 자체를 비판하면 남성이 호감갖는 여성이 되기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김지윤님의 연애상담을 더이상 나쁘지 않게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작년 한해동안 '나꼼수'를 긍정했던 제 입장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비판의 지점은 명확하지만 정작 '식자'라고 떠드는 연애학 교수들이 해결하지 못한 현실적 문제들을 건드리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스타일이 좋았던 겁니다. 이는 제가 나꼼수와 더불어 김지윤님에게도 흔쾌히 팬덤현상을 즐기는 일원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의미이지요.

4.
저는 이번 사건에서 김지윤님을 옹호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김지윤님이 언급한 분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알고보니 지강유철님이 그 당사자라는 사실에 좀 당황했습니다. 네, 잘못된 만남인거죠.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뭐, 이런 얘길 할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오지랖 작렬이지요. (아내도 지랄말고 가만히 있으라더군요. 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먼저는 페북에서 제3자에 대한 비판의 부적절성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로 논란의 '실체'가 있는 경우 페북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주로 매체를 이용합니다. 특히 페북에서 활동하는 사람에게 쓰리쿠션으로 비판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몇 분 정도가 마음에 걸리네요.) 쓰리쿠션으로 맞을 때가 더 억울하고 분하더라는 기억 때문입니다. 아마도 지강유철님은 김지윤님이 더이상 페이스북의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공인'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한 공인에 대해, 혹은 그 문화현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단문을 썼다고 생각하시리라고 봅니다. 허나 저는 최소한 페북에선 직설화법이었어야 했다고 믿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누군가를 비판할 때 치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목에서는 친절한 설명과 논리전개가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상대가 다수가 공감하는 악인이 아닌 경우 생략과 비유, 단순화된 비판은 자칫 잘못하면 인신공격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강유철님의 비판에 정작 비판 내용이 없다, 혹은 과감하게 생략했다고 보며 그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문제제기한 내용은 '비서를 뒀다' 정도 입니다. 저도 주변에서 김지윤님이 비서를 뒀다는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전해들은 바 있습니다. 또한 더 나이가 많고 더 큰 교회를 운영하시는 이재철 목사님은 비서가 없기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김동호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CEO형 목회자들이 비서를 뒀다는 사실도 압니다. 개인적으로 김동호 목사님이 비서를 뒀다는 사실에 대해 저는 한번도 문제를 삼은 적이 없으므로, 이 건에 대해서도 문제삼고 싶지 않습니다. 조금더 나아가서 저는 "기독교 배경의 그것도 간사 출신의 여성이 성공하니 비서를 두더라"라고 말하는 주변 분들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있습니다. 그리고 '비서'가 매니저인지 파트너인지 그 업무영역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CEO들의 그것과 굳이 매치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그 외에 유추할 수 있는 비판의 지점은 "기독교 지성과 기독교 인권, 한국교회 성차별 현실"이라는 표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대로 기독교 지성과 김지윤님, 기독교 인권과 김지윤님, 성차별 현실과 김지윤님에 대한 텍스트비판이 이루어져야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게 이런 비판의 글이 툭 던져진다면 저또한 이 비판에 대해서 어떤 반성을 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런 이유에서 지강유철님의 비판은 의도와는 다르게 "잘 나가더라도 좀 겸손하게 행동하시지"라는 뉘앙스만을 풍길 우려가 있습니다. 연배로 봐도 그렇고 교계의 위치에서도 그러합니다.

5.
물론, 제가 알기로 적어도 지강유철님은 본인의 연배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할 소리는 하고 안 할 소리는 안 하는 분입니다. 고로 위와같은 제 표현에서 불쾌함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겁니다. 오히려 지강유철님은 본인의 한참 후배인 젊은 청년들에 대한 비판도 열심(?)이시라 득이 될리 없는 논쟁을 하고는 괜히 인심을 잃곤 합니다. 고질병이지요. 본인은 스스로가 별존재감이 없다고 믿는 편인데 주변에서 보면 인지도 있는 교계의 인사인 만큼, 본인의 의도와 정반대로 꼰대의 인상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걸 보고 있는 저는 참 당혹스럽습니다.

그런 이유로, 솔직히 저는 김지윤님이 지강유철님의 글을 컨텐츠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을 때 좀 의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격적인 공격이라고 느꼈고 심정적으로 힘들었음을 토로했을 때 그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제 입장에서 지강유철님의 글은 컨텐츠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컨텐츠가 없는 비판은 사양하니 강의를 듣고 문제 지점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라고 따졌거나, 아예 '비서'를 둔 게 문제로 보였냐고 되물어야 했지 않나 싶습니다.

반면 1993년의 그 분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기에 김지윤님의 지적처럼 '인격적인 공격'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애매합니다. 비교할 인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분의 수직상승과 추락'을 인격적인 모독으로 보기에는 또다른 생략이 넘쳐납니다. 물론 그렇기에 지강유철님이 퉁친 '1993의 그분'이라는 표현 자체가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비판의 날이 들어와도 반격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가 수직상승인 게 문제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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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상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입니다. 제 페친들의 편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페북 안에서 복상 내부문제, 나꼼수, 알라딘, 안철수 등등의 이슈로 편가르기의 느낌을 종종 받아왔습니다. 예전엔 잘 견뎠는데 나이가 들수록 친한 분들과 이슈로 갈리는 분위기 자체를 감내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버티지 못하면 이것 또한 접는 게 옳겠지요.

오늘 김지윤님의 담벼락에는 지강유철님에 대해 "시샘한다", "자기 처신이나 잘하라", "간사님을 대상으로 정치를 하려 한다", "인생이 꼬여서 그렇다" 등의 댓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모두가 김지윤님을 아끼는 분들의 격려겠지요. 허나, 누군가를 격려할 때 반대편 누군가의 인격을 따져보지 않고 해대는 표현들에 대한 불편함 또한 저를 괴롭힙니다. 지강유철님의 이번 글이 제겐 비판의 대상이지만 그분 자체가 제 비판의 대상이 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이런 어정쩡한 글을 쓰고 한동안 모니터를 멍하게 보다가 잠을 청하겠지요. 매일 굿모닝이 가능한 어떤 분이 오늘은 많이 부럽네요. 두분께 또다른 결례가 되었다면 미리 사과드립니다. 샬롬.
2013/06/20 23:10 2013/06/20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