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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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수능시험과 본고사 시험이 떠오른다. 그 춥고도 어색했던 기억.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은... 아랫배가 지속적으로 아프지만 시험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정도의 통증. 생애 첫 새벽기도 일주일 참석.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입시가 무슨 역사책에서 문무를 겸비한 청년들이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대회, 축제라고 하기엔 좀 살벌한 경기 정도로 여겨졌다.

평가는 가치중립적이다. 혹은 자신의 지식이나 수련을 검증하는 절차는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 권력들, 사회 내의 특정 '장'에서 작동하는 '평가'의 위상이다. 입시를 지낸 많은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충고와 격려, 조언들을 일삼는다. 혹은 성적 비관으로 인한 일탈, 혹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에 당혹감을 느낀다.

난 우리세대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좋은 멘토로서 충고나 조언을 하거나 혹은 꼰대기질을 발휘해서 의지력 부족이나 자살로 귀결된 학생들에게 안타까움으로 가장된 비난을 일삼는 일련의 입장이 불편하다. 평가라는 축제를 전쟁터로 만든 건 어른들의, 권력들의 욕망이 그 중립지대를 더럽혔기 때문이다. S대 합격이란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성적 서열에 따라 '인'서울대와 지방대, 그리고 학과순으로 전국학생을 줄세운 후 그것을 세속권력의 줄에 매핑시킨 어른들의 죄의 결과다.

그것을 말리거나 비판하지 않고 그 장의 법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려는 어른들의 순응, 방조, 부드러운 동조가... (그들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비극적이게도) 부드럽게 아이들을 일탈과 자살로 내몰고 있다. 그러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어줍잖은 멘토링으로 청춘들의 고장난 삶을 연장시켜준다.

대한민국 최대 '내전의 날'인 수능시험일. 전쟁을 막아주지 못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충고나 격려, 위로를 하기에 앞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지못미.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내 청년의 시기에 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학생들에게 더 밝은 사회를 선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헛된 꿈과 희망의 멘토링으로, 혹은 개인은 힘이 없다는 핑계로 나를 정당화하고 싶지 않다. 오늘만은 더욱 그러하다. 미안하다, 청춘들.


'12. 11. 8.

2012/11/08 21:54 2012/11/08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