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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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자주 대화하는 부분인데, 실내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배우는 게 많다. 이른바 '몰입'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학습한다. 재미가 있으면 친구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30분이 넘도록 집중력을 가지고 특정한 관찰과 행동을 지속한다.
 
이때 가장 큰 방해꾼은 부모다. 부모의 놀이룰과 아이의 놀이룰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몰입 단계에 들어가기 직전 부모들의 개입이 시작된다. "OO야, 그거 입에 물면 안돼", "OO야 소리지르지마, 시끄러워.", "OO야, 일어나 바닥 더러워"
 
함께 아이들이 노는 순간에도 부모들은 적극적으로 아이들 사이를 중재한다. "OO야 빨리 장난감 친구에게 줘. 니가 형이잖아", "OO야 저기 동생이랑 같이 블럭 쌓아봐" 멀리서 보고 있으면 마치 부모가
 놀이터에서 지향하는 놀이방식의 아바타 수준으로 아이는 자율성을 잃고 불안해하며 자주 노는 중간중간에 부모의 눈치를 본다.
 
부모는 아이 곁에 아예 붙어 앉아서 놀이지침을 교육시킨다. "OO야 우리 블럭으로 집을 만들어볼까" 부모는 아이에게 집을 만들어주고 자동차를 만들어준다. 아이는 부모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 작품을 가지고 잠시 놀다가 이내 싫증을 낸다. 하지만 자신이 자발적으로 놀기엔 왠지 불안해졌다.

결국 아이는 엄마에게 놀이 의존을 시작한다. 엄마 이거해줘, 집 만들어줘, 여기에 올려줘, 나는 잘 못하니까 엄마가 이걸 해줘... 부모는 자기 없인 아이가 노는 것도 혼자 잘 못한다고 한숨을 내쉰다. 내 시간 없이 아이에게 올인한다고 주변 부모들과 하소연을 간간이 해댄다. 그러다 이내 자기 아이를 보고 소리친다. "OO야 그렇게 만들면 안돼. 집이 무너지잖아"
 
2-3세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나 17-18세 입시생을 키우는 부모나 어떤 길을 만들어놓고 아이를 그 길로 걷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 부모들은 아주 초기단계부터 아이의 자발성을 왜곡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걱정스러운 상황이 있다. 어릴수록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그렇다고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온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아이를 물리적인 힘으로 일으켜 세우고 항균티슈로 닦은 장난감만을 고상하게 가지고 놀 수는 없다. 아이 입장에서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하나의 역할극 내지는 무선조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는 은연 중에 아이의 몰입에 의한 학습 발달을 방해하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듯 하다.

물론 그 반대의 극단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몇몇 부모들은 아이를 놀이터에 던져 놓고 자신은 스마트폰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내가 종종 그렇다.ㅠㅠ) 때때로 부모는 개입하지 않음과 방치를 오해한다.

개입하지 않는 순간에도 부모는 효과적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다. 부모는 아이의 세밀한 행동들을 관찰해야 한다. 아이는 도약하기 직전의 선수나 잠시 웅크린 개구리와 같다. 그러므로 그 아이의 작은 몸짓, 표정, 손길, 말 한마디들을 읽으면서 아이의 독특한 성격과 욕망, 성장의 속도를 유추할 수 있다.

때때로 적당한 시점에서의 부모의 개입은 벽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모터 로봇을 돌려놓은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작은 매듭에 걸려 헝클어진 실의 한쪽 끝을 풀어주면 긴 실타래가 한번에 풀리는 것처럼 아이는 더 높게 멀리 뛸 수 있다.

잦은 개입, 혹은 완전한 방치.. 그것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두기, 적당한 개입, 무엇보다 좋은 관찰자로서 부모가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이의 몰입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직 더 배울 것이 많겠지만 현재로서 내가 느끼는 부모의 자리는 그렇다.

2012/10/30 23:30 2012/10/30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