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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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람 포>는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빌과 2007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독일예술영화조합상 수상, 2007 BAFTA 스코틀랜드 여우주연상 수상의 화려함 때문에 큰 기대감으로 본 영화다. 단적으로 말해서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빌과 여주인공 소피아 마일즈의 연기가 돋보인 이 영화는 감독 데이빗 맥킨지의 명성을 한 단계 올려놓은 영화로 평가될 것 같다.

주인공 할람은 사랑하는 친 엄마의 죽음으로 사람들을 잘 대하지 못하고 멀리서 훔쳐보는 버릇을 가진 소년이다. 그는 엄마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상처, 그리고 엄마가 죽기 전부터 아빠는 새엄마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증오심은 새엄마에게 향하며 그녀가 자신의 친엄마를 죽였다는 심증을 키워간다. 한편으로 그는 아빠와 새엄마의 정사장면을 보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도 키워가던 중 이를 감지한 새엄마와 관계를 갖고 자괴감에 빠져 집을 떠나 에든버러로 도망친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 엄마와 닮은 여성(케이티)을 쫓아가 그녀의 도움으로 호텔 식당에 취업한 그는 또다시 끊임없이 그녀를 숨어서 관찰하고 다가간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행각이 탄로난 할람에게 호기심과 모성애을 느끼는 케이티는 잠시 그에게 애정을 갖다가 이내 관계를 정리하려고 마음 먹는다. 할람은 다시 찾아온 새엄마의 독설에 화를 품고 그녀를 익사시키려 하지만 다시 그녀를 구해내고 달려온 아버지의 호소에 마음이 동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케이티와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덤덤한 웃음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할람의 모습으로 장식된다. 그는 상처입은 소년의 위치에서 어느덧 성장을 경험한 것이다.

이 영화의 묘미는 지탄 받을만한 상황들에서조차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가서,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조명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과 정사를 나누는 새엄마조차도 악인으로 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의 설정은 과장되지 않지만 진실하다. 엄마를 닮았다는 이유로 매일 케이티를 미행하고 훔쳐보는 할람이나 유부남과 애인 관계를 갖다가 할람의 모든 행동을 알고도 그를 받아들이는 케이티도, 아내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고 반항하는 아들에게 끝까지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까지. 다 악한 면과 나약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공감이 가는 인물들이다. 또한 이 모든 인물들은 결국에는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의 문제가 드라마틱하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들은 그대로 남지만 인물들 각각이 그러한 미결의 문제 또한 받아들이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주인공은 새엄마를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용서하지만 자신이 일하던 호텔을 나오고 케이티와도 헤어진다. 케이티는 전 애인이었던 유부남과 헤어지고 할람을 선택하지만 할람이 아직 어리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와도 헤어진다. 상처들은 조금씩 치유되지만 모든 관계는 미결로 남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인다. 아니 극도로 흥분하며 증오심에 휩싸이거나(이 경우 영화에서 주인공은 짐승의 가죽을 쓰고 얼굴에 색을 칠하는 행동으로 대변된다), 반대로 극도로 기뻐하며 방안을 휘젓고 다니던 모습으로부터 이제는 다소 안정되고 여유있는 웃음이 뭍어난다. 큰 산을 넘긴 했지만 문제가 해결되거나 해피엔딩의 결말이 아니기 때문에 더 영화에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열린 결말이 더 현실의 일상에서 진정한 의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닐까 싶다. (끝)

2008/11/19 19:16 2008/11/19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