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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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Sam"을 보면서 마음 한 편이 껄끄러웠다. 사실 당시에는 샘의 모습, 변호사의 변화, 딸의 말과 부녀간의 애절한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감정이입에 충실 하느라 그냥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껄끄러웠던 감정들은 가벼운 분노의 마음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처음에 비치는 장면은 스타벅스 커피샵이다. 샘은 지능이 낮은 아버지로 등장하며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받거나 청소를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후반에는 피자헛으로 그 직장을 옮기게 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모습은 실제 프랜차이즈 안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바쁘게 주문이 오고 가며 빠르게 움직이는 점원들을 유심히 보면서 매니저를 제외한 사람들 중에 샘과 같은 사람은 고사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을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샘은 복잡한 주문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파들이 무서워서 근처 단골 식당이 아니면 식사를 하지 않으며 딸의 고집에 못 이겨 따라갔던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는 급기야 당혹스러움을 표현한다. 그런데 왜 그 곳보다 더 분주하고 주문도 복잡하게 받는 스타벅스와 피자헛은 편안한 직장으로, 따뜻한 분위기로 비춰질 수 있었을까.

한편,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가장 중요한 대사들 속에는 미국 팝음악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비틀즈 맴버들과 노래들 제목으로 가득 차 있다. 배경음악으로도 쓰이고 있는 비틀즈의 음악은 가장 핵심적인 대사 가운데에서도 맴버들의 사생활이라거나 비틀즈의 음악 세계를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코드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마지막의 감동적인 샘의 대사는 미국에서 영화의 고전으로 받아들이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대사를 외운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기위해 미국인이 선호하는 영화들까지 봐줘야 한다.

영화는 은근히 미국적인 것이 참으로 따뜻하고 안락하며 뭔가 의미 있는 코드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그 위에다 모자란 아버지와 영리한 딸이라는 안타까운 플롯을 얹은 셈이다. 제3세계에 속한 우리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황색 인종들은 스타벅스나 피자헛에서 안락함과 인간적인 면들을 발견해야 하고 비틀즈의 음악 세계에 빠져들어야 하고 그 맴버들의 이름은 물론 히트친 노래들과 가사들을 암기하고 맴버들의 관계들도 추가로 이해한 후에 뿌듯함을 느껴야만 한다. 결국 가장 미국적인 무엇을 알아야만 이 영화는 우리에게 휴머니즘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혹시, 이 영화의 주제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팍스 아메리카나"가 아니었을까..

2008/12/27 19:27 2008/12/27 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