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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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모조미학 (模造美學) (2000. 4.)
/ 김용주


얼마 전 할머니께서 조화(造花)를 만드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홀로 지내셔야 하는 적적함을 견디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라는 생각에 어머니와 함께 마음 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할머니가 손수 만드신 꽃을 보내 오셔서 오랜 만에 집안에 꽃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걸음만 뒤에서 본다면 마치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세련된 꽃의 생기있음에 자주 놀라곤 합니다.

하루는 방 안을 정리하다가 너무나 삭막해져 있는 내 주변을 보게 되었습니다. 컴퓨터와 그 주변 도구들, 전화기, 그밖의 여러 전자 제품들, 그리고 난해한 책들로 수북히 쌓여있는 제 방에서 인간의 정서를 느끼기엔 너무 모자람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제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다름아닌 가짜 꽃들이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선택해서 꽃꽂이를 해 놓으면 내가 원하는 임의대로의 완벽한 미(美)를 갖출 수 있고 물을 주지 않아도 되고 시간이 지난다고 지지도 않는 꽃을 생각하니, 작은 노력으로도 좋은 볼거리를 제공할 그것의 효용에 마음이 "동"하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분주히 꽃을 놓을 자리를 생각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나의 어리석음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방 안에 인간적 정서를 회복하기 위해 기껏 궁리한 것이 모조품이라는. 그 희한한 모순성을 가지고도 스스로에게 흐뭇해함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생화와 모양이 비슷하면서 어떠한 정성없이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을 탐하였다는 생각, 매일 정성을 들여 물을 주고 햇볕을 쬐여 주어야만 되는, 그 "당연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꽃가꿈의 기본적 소양없이 그 결과적 미학만을 추구하였던 저의 속물 근성에 저를 심하게 질책하였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인의 습성에 많이 젖어들게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현대적 사고가 모두 이기적이고 기계적이고 냉정하다는 식의 극단적 사고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간혹 아무런 여과없이 베여드는 현대적 가치들은 수시로 상기해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닌지. 특히나 이른바 모조미학이라는 이름아래 우리가 얻고자하는 극단적 효용론과 속도로 대표되는 그 내부적 가치의 간과성은 비판이라는 이름아래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관계란 것도 수많은 관심과 대화 속에서 그 소중함을 체험하게 되는데 적은 투자로 큰 가치를 누리려는 현대의 어리석은, 그러나 당연시되고 있는 그 모순적 철학들을 이제는 지양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닌지...

어릴 적 화단에 꽃을 심은 적이 있습니다. 그 씨앗부터 심어서 줄기가 자라고, 어느 덧 꽃대가 나온 뒤, 그 기나긴 여정의 끝에 만나게 된 꽃의 만발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조바심을 가지고 어머니에게 투정하듯 '내일은 꽃이 필까'라는 중얼거림 속에 기다림을 배우고 매일 그 꽃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사랑으로 보살핌이 종국에 그 원색적 아름다움을 안겨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 쏟은 정성들과 하루하루의 진일보했던 시간들을 통틀어 얻게 된, 나의 정성에 대한 "꽃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더 큰 아름다움이 그 안에 있었다 하겠습니다.

오랜 만에 꽃씨를 사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00/03/31 00:53 2000/03/31 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