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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결정이 한국 교회의 희망입니다
: 대형교회 목사님의 아드님들에게 보내는 서신

 
/김용주

  

새벽에 잠에서 깨면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이제는 어느덧 따스한 햇살이 그간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온기를 가져다 주는 봄기운을 느낍니다. 이 서신을 님께서 받아보실 즈음에는 이미 녹음(綠陰)이 푸르게 새 생명을 얻을 시기일 것 같습니다. 평안하신지요.

저는 조그만 교회를 다니고 있는 기독 청년입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우연히 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과 성도들의 가슴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줄 만한 이야기였기에 저는 지금까지도 많은 관련된 이야기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기정사실로 들어날 때마다 저는 님과 님의 아버지의 선의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님의 아버지께서 한국의 교회를 세우는데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흔히 복음주의 1세대라고 지칭하는 데에는 지금의 대형교회로 성장한 몇몇 교회의 목회자 분들의 헌신과 노력이 깃들어 있으며 그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터 위에서 우리가 커왔다는 생각을 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그 분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처음 담임 목회직 세습에 대한 논의가 나왔을 때에도 저는 그 부당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님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좀더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부성애는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본성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님께서도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 그리고 효심(孝心)으로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하셨을 거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자, 저는 세습이 부적절한 판단과 행동이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서도, 부족한 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내심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렇게 님에게 서신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으로는 님이 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저와 성도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위하여 큰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 사역을 하다 보면 자신의 아들을 학대하고 내버리고,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임의로 자녀들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볼 때, 저도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되어서 그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진정 누군가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하는 일은 지속적인 자기 것의 포기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하지만, 님의 아버지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 분들입니다. 당신 입으로 자주 말하는 '주의 종'입니다.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작정하신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분들의 자식 사랑은 공감은 하지만 용납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분의 헌신으로 세워진 교회인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그 분들의 가르침 아래에서 시장바닥에서 힘겹게 일을 하면서도 예배당을 짓고 하나님께 당신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헌금을 해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의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못 보내는 일이 있어도 교회에 헌금이 부족한 경우에는 기꺼이 자식의 대학 진학을 포기시키고, 집의 전세비를 빼서라도 헌금에 열심을 내었던 일이 다반사였다고 들었습니다.

님의 아버지가 독재 시절에 사회에서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던 것은 그러한 선량한 성도들이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렇게 함으로써 얻은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성장하게 된 기독교가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이 희망을 잃어가던 시기에 큰 버팀목과 안정을 줄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억지스레 고개를 끄덕여 보던 적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제가 듣게 된 이야기들은 오히려 저를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분들의 그러한 과거지사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꽃피울 때에 진정 그 당위성이 받아들여지게 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재정적인 비리 의혹과 '제왕적 리더쉽'이라고 표현되는, 그리고 인맥을 중심으로 담임 목사직을 세습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그간 그분들의 논리에 대한 당위성을 인정하려던 일말(一抹)의 명분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님의 아버지의 부정부패의 변화를 촉구하는 시위와 포럼장에 가 보기도 하고 기사로 듣기도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하늘 아래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만나야 하는 건지, 처음 시위에 동참하러 가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저는 이내 님의 아버지를 왜곡되게 사랑하는 사역자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비난과 욕설, 그리고 폭력을 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단으로 치부하고 조롱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역자 분이 전문적으로 힘을 쓰는 머리짧은 분들을 데려와서 포럼 위원들을 힘으로 진압했을 때에 저의 가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분노할 수 없는 채로 절망했습니다.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대응에 저는 같은 식으로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아래에서 그 분들도 우리가 끝까지 사랑해야 할, 서로의 심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한 형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님의 아버지께서 권력과 명예나 재산을 탐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기사들이 나온다 해도 저는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저 사랑하는 아들의 길을 조금만 닦아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은 한국의 천만 성도들의 아버지에게도 동일한 마음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뒤로한채 예배당을 짓는 곳에, 선교를 하겠다는 곳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쓰여진다는 곳에 님의 아버지가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은 자식의 편안을 위해 모아 두었던 재산들을 거리낌 없이 바쳤습니다.

저는 님이 커다란 기업의 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백억원이 드는 개척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아버지의 교회에서 이제는 목회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장인어른과 40년 사이의 리더쉽을 뒤로한 채, 대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또한 아버지를 잘못 섬기는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좋건 싫건 그러한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주변의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빨리 안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하게 됩니다. 아픔이 지속되면 누구나 힘들어하고 공동체에 덕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2세대인 님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정말 뵐 수 있다면 무릎을 꿇고라도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님의 청년기의 꿈은 이런 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처음 복음을 전해듣고 마음에 생겼던 뜨거움은 이런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낮아짐과 그 피흘림. 죄를 위해 자신을 버려야 했던 창조주의 사랑 앞에 우리의 초라함과 죄성을 깊게 뉘우치며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회개한 그 날의 우리는 이런 것을 꿈꾼 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얻게 될 안정된 그 자리에서 님은 젊은 시절의 영적 충만함과 기쁨을 느낄 수 없지 않습니까. 님께서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 가졌던 그 기쁨은 지금의 자리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시간이었지 않았습니까. 편안한 그 일체를 버리고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찬송하고 기뻐하고 눈물흘리던 님들이 아니었습니까.

저의 아버지도 나이가 드셨습니다. 젊었을 때의 패기와 어릴 때 제가 느꼈던 아버지로서의 강한 인상이 많이 사라지셨고, 마음도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인간적인 부분으로 이해해 드려야 할 일들도 많아졌습니다. 때론 자식을 위해 판단력도 많이 흐려지시는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도 점점 제가 편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아버지께 저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됩니다.
사실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험한 삶을 마쳐갈 즈음에 자식이 고생하지 않을 수 있는 힘과 권력이 내게 있다면 저도 그러한 일에 분명 유혹을 받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육체의 부모는 님을 맡은 것 뿐이며 우리의 영적 아버지는 때때로 육체의 아버지가 행하는 잘못된 방법들을 원치 않는다는 저의 신앙 때문입니다.

님의 결정은 아주 중요합니다. 님의 교회에서 이야기하듯 님의 교회는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돈으로 세워진 예배당 같은 건물이나 재산과 명예가 아닌 성도들 그 자체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님의 아버지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님의 결정에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 님은 아직 젊지 않습니까. 지금 님의 학력과 재산과 명예만 가지고도, 아버지의 그러한 방법 없이도 님의 능력은 드러날 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성도들의 희생과 사랑으로 커온 님들이 아닙니까. 님의 꿈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한국 교회에서 ‘주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님의 결정을 통해 그것을 확증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저와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그러한 결정으로 인해 님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희망으로 님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님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정말로 간절히 원합니다. 종국에 역사는 굽어진 허리는 바르게 펴기 마련이며 그러한 올바른 역사의 결정을 내리게 될 때에, 님의 아버지께서도 마음이 누그러질 것이며 결국에는 님을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피를 심장에 이식 받은 형제된 저의 바람입니다.

영육 간에 평안과 건강을 기원하며.
 


김용주 드림.

2003/05/01 00:46 2003/05/01 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