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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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좀 있다. 나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많은 비평 자체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와 문화 사이의 관계 설정에 있어-스스로도 최대 수혜자라고 여기는-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 리차드 니버의 '변혁모델'로서의 문화 비평에 회의적이다. 기독교인들은 스스로가 진리를 아는 자, 진리를 가진 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자주 현실 세계에서 아마추어리즘에 만족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오히려 세속화를 배척하거나 격리되는 방식을 사용하는 종교 근본주의적 성향의 신자들과 달리 세속 사회 언저리를 배회하며 어정쩡하게 삿대질이나 해대는 존재, 뭐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았다.

   
▲ <아이갓 iGods> / 크레이그 뎃와일러 지음 / 황영현, 황규준 옮김 / 아바서원 펴냄 / 408면 / 1만 9500원

 

일례로 몇몇 뛰어난 연주자들을 제외하고 나는 CCM이라는 장르의 '아마추어리즘'이 싫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다수의 CCM 가수들은 기똥차게 노래를 잘하지도, 나름의 철학이나 내러티브를 가진 완성도 높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닌, 세속 음악계에 진입하기에는 모자란 역량을 '신심'으로 커버하려는 어떤 욕망이 느껴질 정도로 실력 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 줄 때가 많았다. 결국 CCM이란 게, 음악 자체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에, 한때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던 착한 교회 청(소)년들의 일시적인 소비 대상, 혹은 해소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급격히 그 시장이 축소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메타 비평의 형식을 빌어서 풀어내는, 이른바 '기독교적 관점으로 본 OO'이라는 비평들도 CCM과 마찬가지로 태생 자체가 B급이라는 편견을 가져다 줄 때가 많았다. 심리학, 과학(특히 진화론), 인문학, 사회학, 비교종교학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문화의 변혁자를 자처하는 기독교인들은 한 꺼풀만 벗겨 보면 근본주의자들의 텍스트와 맞닿는 듯한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나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세속 사회를 바라보겠다는 '돈키호테' 식의 메타 텍스트들에게서 점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다. 본서 <아이갓 iGods>은 부제 'IT 기술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말해 주듯 전형적인 기독교 메타 비평서다. 솔직히 앞서 말한 이유에서 본서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허나 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유익하게 읽었다. 특히, 우리가 최근에 열광하는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개별 기업이나 사이트를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사회 전반적인 부분까지 나아간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상당히 진지하고 깊이가 있었다. 게다가 개별 기업들의 분석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IT 역사를 이해하는 개론서로 이 책과 더불어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권하고 싶다.)

본서는 IT 기술 자체에 대해 비판적이다. 제목이 말해 주듯 'IT 신들'(iGods)은 진정하고도 유일한 신인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바꾸었고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은 온라인상으로도 양서를, 나아가 세상의 모든 좋은 상품을 구별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가져다 주었으며, 페이스북은 또 하나의 사이버 커뮤니티를, 트위터와 유튜브는 인터넷 민주화의 도구로 활용되는 등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관점은 기술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나는 대부분의 각론에 있어 저자의 우려감에 크게 공감한다.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는 현대 IT 기술에 관한 해박하고도 방대한 분석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특히 한때 트위터가 정치-사회적 민주화의 도구가 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반대로 국가기관에 의해 적극 활용될 소지가 있음을 주의 환기시켜 주는 대목이라거나, 페이스북을 바라보는 관점과 분석으로부터 기인한 깊은 영적 성찰은 북미가 아닌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혜안이었다. 특히 페이스북 특유의 문법, 이른바 '나는 자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선언은 우리가 쉽게 포스팅하는 페이스북의 글들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꽂히는지를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묵상해야 할 화두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기술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에는 상당 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나는 기술을 비판하는 기독인들의 이중성 자체에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이 자주 신봉하고 인용하는, 자끄 엘룰의 <기술 사회>에서 말하는-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스스로가 생명력을 가진 채로 팽창하려는 습성을 가진-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려감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듯한데,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주머니와 가방 속에 스마트폰, 태블릿, 킨들 같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알고 있다. 고로 그 이중적 태도의 근저에는, 스스로는 통제를 잘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일반 대중, 평신도들에게 IT 기술은 위험한 존재라고 믿는 어떤 선민의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당수의 엘룰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나는 'iGods'와 하나님 사이에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접근에 회의적이기도 하다. '두 주인'론은 흔히 말하는 돈, 섹스, 권력과 같은 현대사회의 우상이 될 만한 어떤 대상과도 대립 구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도 한때 초콜릿, 왈츠, 록 음악, 진화론, 정신분석 등과 같은 피조물과 하나님은 양립할 수 없었다. 지금도 게임, 입시, 스포츠 등 모든 피조물과 유일신은 세속 사회에서 경합을 벌이고 '능력 대결'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입장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고 한동안 바뀔 성 싶지 않다. 사실 어딜 가나 무얼 하나 인간 그 자체가 문제라는 거다. 고로 나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IT 기술은 도울 뿐, 정작 악한 것은 인간이다'라고.

2014/04/09 21:36 2014/04/09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