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기고글 모음/기타

현장에서 느끼는 기독지성운동
/김용주


1. 현장, 30대의 일상이라는 전쟁터
대 학을 졸업한 지는 7년째이고 회사에 입사한 지는 5년째이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화성에 있는 직장에 출근하면 퇴근은 11시. 그래도 주5일제 시행으로 주말에는 쉬지만 연차가 올라가면서 늘어난 업무량으로 인해 그마저도 요즘은 여의치가 않다. 회사에서는 점점더 인원을 줄여가고 있으며 그만큼 축소된 인원으로 더 많은 업무를 감당시키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명예 퇴직을 권하며 선임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진급하는 인원도 극히 일부분이다. 정년이 그만큼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내에서 자기 개발이나 어학 공부, 혹은 성경 공부나 독서를 하려면 식사 시간에 끼니를 걸러야 한다. 책을 읽거나 글이라도 쓰려면 식사를 거르고 퇴근 버스 안에서라도 짬짬이 시간을 내야만 한다. 정년을 생각하면서 전세 대출금을 갚기 위한 돈계산을 해보면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고서는 몇 년 내로 서울에서 작은 평수의 집은 커녕 대출금을 다 갚기도 쉽지 않을 성 싶다. 대기업 사정이 이러니 2차, 3차 협력업체는 더 열악하다. 일정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상사의 지시에 의해 업체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를 떠넘겨기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퇴사하는 젊은 업체 직원들도 많다. 급여는 대기업에 비해 적으면서 며칠 밤, 심지어 몇 달씩 야근에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잦아서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최근 비슷한 연배의 동료나 친구들은 결혼을 했고 이제 아이를 낳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삶의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내는 임신 후 육아 휴직 등 사내의 껄끄러운 분위기 때문에 자신의 경력을 포기한 채 직장을 그만 두었고 출산한 이후에는 늦은 퇴근으로 육아를 돕지 못하는 나로 인해 육아에 부담을 느껴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요즘은 주변에서도 출산 후 바쁜 남편과 고부갈등, 육아에 대한 심적 부담감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이 많아졌고 그러한 문제로 이직을 하는 남편들도 생겨나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들의 경우에는 육아 도우미를 쓰거나 기관에 보내기도 하는데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기피하기도 하고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드는 비용이 만만찮다. 요사이 육아 관련해서 알아야 할 것들도 많아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은 정보를 빨리 얻어야 좋은 부모가 된 기분이다. 이렇듯 육아라는 프로젝트를 놓고 부부 두 사람이 서로 동역자가 되어 이를 감당하고 있는데 직장에서 지칠 때까지 업무를 하고 있는 30대의 부모들은 이제 자기들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어둔 채 직장생활과 육아에 올인하며 이 시간들을 간신히 버티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도 이전에는 신앙서적도 꽤나 읽었고 사회 문제에 관심도 있었고 때때로 참여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도무지 수면시간을 줄이는 방법 외에 이런 일에 시간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대기업과 같은 제조업 관련 직종에게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직장의 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좀더 자라거나 직종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상황이 변화될 것 같지 않다.

 


2. 일상에 허덕이는 다수의 기독지성인들
IVF 시절, 내가 경험한 가장 큰 갈등은 선교단체의 방향성 문제였다. 내부적으로 길고 지루했던 논쟁도 있었고 암묵적으로 제재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갈등의 주요 원인은 이러했다. 나의 주장은 사회 참여의 문제를 학부 때에 사역 방향에 포함시켜서 총체적 복음을 회복하자는 것-이것이 내가 이해한 IVF와 복음주의의 방향성이었다-이었으나 지부 내의 분위기는 개인 영성을 먼저 다진 후에 사회에 나가서 각론을 실천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리더쉽 자체가 두 방향으로 분리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이후에는 IVF 외적인 일들-기연 활동, 총학 진출, 복음과상황 독자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지부 학사 모임이 있었는데 이제는 점점 그 모임 자체가 경조사 모임으로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며 주변 선후배들을 보더라도 졸업 후에 사회참여의 각론을 잘 실천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직장에서 기독인을 만나서 간혹 IVF 선교단체에 속했다는 말을 하면 여전히 어떤 기대감으로 나를 대하는 것을 종종 본다. 사실 지성사회 복음화를 모토로 내걸었던 선교단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삶의 모습이 여전히 부끄럽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나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성 문제를 거론했을 때 캠퍼스에서 개인 영성에 집중할 것을 주장했다면 분명 졸업 이후에 사회참여 각론에 있어서의 어떤 방향성에 대한 지침 내지는 훈련의 장이 필요했을 법한데 IVF운동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모델 제시나 훈련의 장 내지는 현장에서의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듯 하다. 학사회 모임도 여전히 실천을 담보로 한 어떤 운동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그저 파라처치의 OB 예배 모임 내지는 재활 교육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생각에 앞서 언급했던 현장의 문제들이 30대 직장인에게는 분명 커다란 부담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담임직 목회 세습 문제로 시위에 참여하거나 시청 광장으로 나가는 일에 있어서도 혼자 결정하고 시간을 내어 참석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도 내 개인의 문제니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좋다는 책과 기사들은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꼼꼼히 읽어냈고 실시간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곤 했는데 이제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시의적절하게 그런 일을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학부 때부터 철저하게 고민하고 관련된 논의들을 공부했어도 사회에 나가서 그러한 일들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고 실천해 옮기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물리적 시간과 심적 여유가 많았던 캠퍼스에서조차 그러한 고민과 참여의 경험이 없는 다수의 기독인들이 갑자기 사회에 나가서 총체적 복음을 회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길 기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3. 변방의 고수들, 선지자적 방관주의
다 행히 특정 부류의 기독인들이 이러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데 선교단체 출신의 신학도들이나 석사, 박사 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 주로 대학원생들이 이런 부류이다. 이들은 여전히 캠퍼스에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으며 어떤 사안에 대하여 최신의 자료들을 가지고 균형있고 시의적절하게 문제를 접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들의 실천이 비교적 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어떤 기독 잡지 기자는 내게 교계에서 비판적인 글을 쓰는 몇몇 교수와 대학원생들을 거론하면서 그들의 이론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가 느끼기에 지성적인 영역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교계의 다수의 사람들이 비판적인 논조에만 그치고 실제로 그 문제의 현장에 뛰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 또한 이에 동의한다. IVF가 됐건 복음주의권이 됐건 간에 그간 지성사회 복음화를 부르짖으면서 어떤 현장에서의 실천이 전혀 담보되어 있지 않은 많은 담론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성적 탁월함 자체에만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과거의 낙선 운동이나 목회세습 반대 운동, 그리고 최근 IVF 출신 학사들이 하고 있는 러빙핸즈 같은 사역들에서 간간이 열매들이 파편적으로 나오고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패턴이나 연결고리를 가지고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단회적이고 개인의 역량에 국한된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잘 찾아보면 주변에 지성 영역에서의 변방의 고수들은 많으나 그들의 이른바 선지자적 방관주의는 그들로 하여금 실제로 현장으로 내려와서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첫발을 내딛는 행위는 시도조차 않은 채, 헛딛는 교계의 행보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에 그치는 것 같다. 그리고 북미 중심의 기독교 이슈들과 출판물들에는 비교적 빠른 습득과 전파를 보이지만 한국적 상황에 대한 성경적 적용이나 토착화 문제, 그리고 외부에서 오지 않은 독특한 기독교적 관점의 생성에는 미흡한 면이 없지 않은데 이도 결국 돌아보자면 이론과 실천의 괴리가 한국 사회의 저변에 딸려 있는 상황들과 기독교 지성운동이 따로 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4. 참여와 연합을 꿈꾸며
직장인의 입장에서 졸업 후에 복음주의 운동, 혹은 지성사회 복음화 운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학부시절 그렇게 존경하던 선배들이 학사가 되고 나면 수면에서 사라지곤 하는 일들을 보면서 실망도 많이 했지만 정작 30대로서, 직장에서 중간 직급의 위치에서, 그리고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조차 버겁고 힘들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매순간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고 고민하게 된다. 이런 치열함 때문에 과거에 사회 문제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기독인들이 이 시기에 어떤 교계의 중추세력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선교단체의 방향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현장의 무게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지성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인들은 한 발 물러난 위치에서 현장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에 머무르는 느낌이다. 이 두 부류는 운동성을 담보로한 어떠한 연결 고리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인다. 내가 학부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소명은 복음주의권 안에서의 참여와 연합이다. 남들이 보기에 다소 무력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기독 직장인들은 나름 몸부림치고 있다. 이들을 실천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운동과 그에 대한 참여 방법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
2012/10/11 23:51 2012/10/11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