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업무를 하다보면 공부가 필요할 때가 많다. 특히나 답이 없는 문제들이 다반사이므로 그 답을 찾기 위해 봐야할 고전적인 문헌부터(내 경우엔 이를테면 기계진동학, 동역학 같은) 최신 기술논문, 기술동향을 알 수 있는 잡지 등

물론 루틴하게 업무를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경우에도 답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단회적이거나 그 시스템에 한정된 해결책일 뿐 그 근본 귀인, 메카니즘의 이해가 없으므로 지식의 축적에는 기여하지 않는다.

대체로 내가 맡은 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쓰는 시간 중 순수 공부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대략 맨아워의 1/5정도를 쓴다. 물론 이 분야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했으니 예전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해답을 찾기 위해 썼으리라.

어쨌든. 나머지 4/5의 시간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위 시간'이다. 내 경우엔 내가 맡은 설계 부품의 시뮬레이션과 단품, 실차 평가간의 상관성, 개선 여부, 데이터의 정리, 보고서 작성을 포함한다. 특히, 보고서는 보고 받은 이에 맞게 가공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입증된 하나의 개선안은 exemplar가 된다. 그리고 유사한 문제에 이 개선 사례를 적용하여 동일한 해결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대안이 된다. 그 대안에 의해 문제는 개선되고 시스템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종종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문제를 분석하는 것에 지나친 의의를 두는 것 같다. 혹은 날카로운 분석에 이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어떤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 길을 누군가 죄꼬리만큼이라도 걸어가야 그것은 하나의 실행가능한 exemplar가 된다. 그 길을 누군가가 걸어가줘야 하고 스스로는 관행의 비판과 분석, 대안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물론 모든 담론은 대안이 있어야 하고 또한 스스로가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수 없다. 메타 비평이나 정치 비판도 어떤 의미에서 주체나 전문가가가 아닌 이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메타 비평도 지평을 넘나들 때 exemplar를 필요로 한다. 정치 비판에서도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본인이 걷지 않았더라도 성실히 누군가가 걸은 exemplar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자주 담론은 스스로가 앙가주망(참여)을 요구한다.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 공부하는 이들이 분명 더 나은 해답을 발견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exemplar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공부는 구조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점점더 exemplar주의자가 되어간다.
2013/09/13 23:26 2013/09/13 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