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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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택배가 주말에도 온다. 주중에 해결이 안 되는거다. 부끄럽게도 택배가 밤에 오면 기뻤다. 퇴근하고 좀 있으면 기다리던 물건을 갖다주니 희희낙낙이다.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이 나라에서 내 상품을 가져다 주기 위해 누구네 집 아빠는 밤늦게까지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인터넷을 고치고 전자제품 A/S를 한다. 사실 같은 직장인으로서 퇴근시간 이후에는 방문 서비스가 야근임을 직시해야 하는데 그게 잘 연결이 안 된다.

손학규 전 후보의 모토 '저녁이 있는 삶'... 아빠~ 하며 달려나와 아이가 안아주고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오늘 같은 날 함께 빼빼로나 입에 물고 동화책을 읽고 싶은 평범한 가정생활을. 총알배송이니 당일수리니 하는 매직같은 이야기를 현실화시켜 그것을 대한민국의 경쟁...력으로 담론화하려 한다.

편하면 싱글벙글하게 되는 우리네 삶이 아니, 내 삶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진행되고 있다. 나또한 그것을 위해 불철주야 일한다. '내 저녁'을 버리는 것이 경쟁력이 되어버렸다.

'총알배송이고 나발이고.'

이 나라는 '타인의 저녁'을 서로가 배려해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각박하고도 견고한 사회구조가 갖춰졌다. 누군가가 해주려는 과한 서비스에 눈쌀을 찌푸릴 수 있는 시민의식이 필요할 정도로 말이다.

30분 이내에 음식을 배달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알바 스쿠터들이 도로에서 부딫혀 나뒹굴고 누군가가 괴로워 자살을 해도, 빠름빠름~ 노래할 수 있는 너와 나의 멘탈... 자국민이 힘들어하면 타국민을 시켜서라도 동일한 성과를 내고자하는 글로벌 시장.

책으로만 읽던 이야기. 정서적으로, 머리속 망상 속에서만 좌파행세를 하면 되던 시기를 지나 이제 이 담론들은 점점 내 일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내 양심과 정서가 더 무뎌져야 한다고 속삭인다.

오늘도 나는 내 택배가 오고 있나 인터넷을 뒤져봤다. 어떤 사람이 내 택배를 들고 있는지, 어디쯤 내 택배가 오고 있는지, 내 택배를 든 사람의 휴대폰 번호가 뭔지, 나는 다 알고 있다. 정말 우리 나라 좋은 나라지? 젠장.
2013/11/13 23:30 2013/11/13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