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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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아버지 칠순에 낭독한 내 글을 정작 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아버지가 본인이 가부장적이었다거나 '어머니에게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고 했다. 아내는 당일에 아버지에게 들으시면 감동하실 거라고 말했지만 슬프게도 아버지는 내 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아버지와는 사실 말하지 않음으로 이해된 어떤 부자의 정이 있었다. 이를테면 오해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언어를 사용하여 그 오해를 해결했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을 그렇게 평가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막내 작은 아버지 환갑 때도 술에 취해서는 "용주가 쓴 글은... 그건 아니고"라고 흘리듯 이야기했다. 그건 아니다. 휴가 때 내려가서도 아버지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원래 말을 잘 안 하시지만, 식사 시간에 혼자만의 일장연설을 한시간씩 쏟아내는 당신의 성격 상 전혀 언어화된 자기를 표하지 않는다는 건 나름의 의미,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아버지는 한번도 자신의 삶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잘못에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부모 자식간 그 흔한 빈말로도 "미안하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은 평생 아버지의 이슈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삶, 다른 존재로, 혹은 반면교사의 미덕처럼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아버지와 갈등이 없었던 건 아버지가 나름대로 채워온 나-아버지의 관계의 망상을 그냥 두었기 때문이고 이제는 그 망상을 내가 언어로 규정지었기에(깨뜨렸기) 아버지는 나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소극적인 방식으로 나에게 그 받아들이지 못함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후회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언제고 아버지에게 내가 아버지의 삶을 내가 바라보는 시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느꼈다. 물론 아버지가 내 언어를 흔쾌히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아내와 더불어 거의 확신에 찬 기대감. 물론 속이 상한다. 그닥 살가운 경험은 없지만 아버지는 세상에서 마음의 문을 닫고 그나마 애정을 쏟은 단 하나의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들, 나였기에. 나도 그것을 알고 있고. 이제 그 희미한 연결고리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부자 간의 정서적 고리가 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기질에 의해 서로를 밀어내고 자신을 지켜간다. 피치못하게 너무 강한 에너지로 다가오는 타자에 대해서는 잘라내거나 그것에 압도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와 나 사이의 너덜너덜함은 서로가 한쪽에 압도되는 것보다 건강하다.부-자.
2013/09/13 23:23 2013/09/13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