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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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나는 예전엔 말을 잘 했는데 요즘은 말을 잘 못한다는 얘길했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말을 잘 한 적이 별로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말은 많고 잘 하는데ㅋㅋㅋ 강의에 대한 부담감이 큰 편이다.  차라리 글을 쓰는 건 괜찮은데 강의는 극도로 긴장하고 일주일 전부터 아내를 괴롭히고 주변에 설레발을 치고... 답잖게 과하게 징징댄다. (요즘은 이 상황 자체를 좀 즐기는 것 같기도..)

 

사실 나는 이런 류의 강의 공포증의 원인을 내 성격 때문으로 생각했다. 소심하기도 하고 다수가 모여있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말해야 할 때 다소 긴장이 심한. 그런데 이 불안함, 어색함을 개선해야겠다고 내 심리상태를 곰곰이 따져본 결과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글을 쓸 때는 상당히 감정적으로 편한 상태다. 오히려 쉼을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생각들의 구석구석을 다 끄집어내어 그것을 논리정연하게, 혹은 시간 순으로 혹은 내가 강조할 이슈를 위해 재구성이 가능하다. 내가 모든 걸 보고 있고 내가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으니 그 상황 자체가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셈이다.

 

글과 달리 말은 즉흥적이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때로 말을 많이 하다보면 말실수나 무의식 중에 생각한 바가 툭 튀어나올 수 있다. 나를 이해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상황에 대해 여러 기제를 동원하여 설명? 해명? 할 수 있지만 내가 넣고 빼고 할 수 없이 던져지는 말들에 대해서는...

 

프란시스 쉐퍼 사상의 가장 큰 성찰점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고 가정할 때 생기는 결과들을 고려해보자'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강의를 하다가 말실수를 하거나 논점을 이탈하거나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글은 내 논리정연한 완성품을 드러낼 수 있지만 말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 또는 긴장.

 

그 불안함의 이면. 그 끝까지 내려가보면 나는 청중의 기대, 청중의 평가에 신경이 곤두서 있음을 느낀다. 물론 나는 포퓰리즘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내 BEST PRACTICE를 보여주지 못해서 생기는 타인의 평가에 대해 무의식 중에도 상당한 불안해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의 불안함은 내가 후천적으로 습득한 반골 기질과 선천적 혹은 자라온 배경에서 익숙해진 모범생 기질 사이의 갈등과도 연관이 있다. 나는 다분히 어떤 기성 세대나 조직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그들이 내 생각들을 공감해주기를 기대한다. 그 공감 도구로 상당히 다듬어진 날을 쓰기를 원하는데 내게 그 도구는 글인 셈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말은 생각보다 사용하기가 참 까다로운 도구인 셈이다.

 

사실 강의를 불편해하는 배경에는 강의가 반복될수록 깨닫게 되는 명확한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소심한 성격 탓이라면 강의를 많이 할수록 더 나아져야 하는데 나는 매번 강의 직전까지 왜 이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할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이 의구심을 계속 파다보니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다.-_-;;;;

 

흥미롭게도 이런 생각을 끝까지 주구장창 하다보면 쉐퍼의 유명한 논점과 만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오해받으면 어쩔건데. 사람들이 내 생각을 아주 정교하게 전달받지 못해서 나를 오해하고 내 강의를 폄하하면 어쩔건데... 그러면 나는 살 수 없나. 타인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면, 그것도 내 반골기질의 생각들을 타인에게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면 내 인생은 멈추나...' 뭐 이런 막장 묵상...^^

2013/09/13 23:22 2013/09/13 2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