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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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단문모음/성경묵상
(출3:13-15)

내 성격은 약간 이중적이다. 내가 주도해서 이끌어야 할 상황이 아니면 다분히 내성적이고 수동적이다. 허나 내가 책임을 지거나 나서야 하는 판단이 서면 다소 적극적인 자세로 돌변한다. 또한 나는 숫기가 없다. 어린시절 손님이 오면 어머니나 누나가 없거나 다른 일을 하느라 대신 나가서 그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고 불편했다.

대학원에서는 교수님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도록 시킬 때 그게 그렇게 싫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올 것이고 나는 주체가 아닌 입장에서 잘 대답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렇다고 교수님에게 이것저것 예상되는 문제들을 꼼꼼이 물어볼만큼 성격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조금의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나는 모세가 주저했을 그 자리에 내가 섰다고 생각해본다. 물론 노예생활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집트를 떠나자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도 사실 만만찮다. 그리고 왜 내가 의분을 일으켰던 그 옛날 나의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이 아니고 이제는 모든 기력과 의지도 별로 없는 노년에!

정말 싫다... 하나님의 메신저. 그 많은 군중 속에서 나올법한 모든 질문들과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불가능해보이는 과정들.. 게다가 나는 살인을 한 도망자가 아니던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동족에게 채찍질한 이집트인을 죽인 나를 살인범으로 몰지 않았던가. 아.. 정말 나서고 싶지 않다.

내가 모세였다면.
흔히 역사 속 이스라엘 민족이나 모세 등등 많은 이들을 다룰 때 불순종의 대상 혹은 실수에 대해 가볍게 비난하는 - 그건 모세의 어리석음이지, 이스라엘 백성들 아직 정신을 못차렸어 - 판단들이 얼마나 더 어리석은지 깊이 돌아본다.

이집트를 떠나 사막생활이 수십년간 이어지고 아이는 굶주리고 돌림병이 돌고 약속은 이뤄지지 않을 때 그 궁핍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보지도 않은채, 책상 사무실에 앉아서 개고생하던 한 인간, 한 집단을 깊이 묵상치 않고 해대는 비난들은, 사실 그 비난의 잣대를 검증해보지 않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긴장되는 상황을 글자로만 인식하는 나또한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모세의 머뭇거림을 십분 공감한다.If I were Moses

2011/09/25 21:22 2011/09/25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