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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모, '욕망해야 괜찮아'
[서평] <대한민국 부모>, 눈에 힘주고 읽었다

 

/김용주
 
#1.

책 <대한민국 부모>를 의미심장하게 읽었다. 읽는 내내 눈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읽어서 한동안 눈이 시릴 정도였다. 이 책은 서두에 자녀 교육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왜곡된 가정문제가 모두 얽혀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공저자들이 말한 대로 '문제의 자녀에게는 문제의 부모가 아닌 문제의 부부가 있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중년의 부부들은 위기에 처한다. 소통의 문제가 생기고 자녀교육이라는 프로젝트 안에서 왜곡된 욕망을 투영한다. 아내는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경험하다가 출산 후 사회생활을 접고 현실적인 선택, 즉 자녀의 매니저이자 자녀를 애정과 투자의 대상으로 규정짓는다.

남편은 40대에 혼신의 힘을 다해 직장생활을 하지만 언제 낙오될지 몰라 집안일·가사노동은 고사하고 특히 자녀교육에서 배제되다가 아이가 반항을 하게 되는 중·고교 시절 군기반장으로 투입된다. 이때는 자녀와 교감이 없는 채로 엄마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적 폭력을 행사하므로 자녀는 급속도로 아빠와 멀어진다.

 

이 부부는 각자 자신의 욕망이 배제된 삶을 강요받으며 혹은 자신의 욕망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며 40대를 자녀교육이라는 대국민 사업에 전념하다가 자주 좌초한다. 대부분 아이의 일탈이 원인이 되며 때때로 배우자의 외도로 가정은 허물어진다.

 

 

#2.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 한다면, 내 아내의 최대 장점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아내는 매순간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항상 돌아보고 그 원하는 바에 우선 순위를 두고 그 다음에야 주변과 조율과정을 거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함께 살면서 처음에는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함께 7~8년을 함께 살아보니 자기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 배우자 입장에서는 더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내도 처음부터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았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사실 오랜 자기 검열과 성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자주 아내는 오히려 나의 억눌린 분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이해하는 나의 분노는 결국 욕망의 좌절에 다름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애썼다. 뭐랄까, 내가 바르게 성장해야 우리 가정의 행복이 보장된다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나는 내가 어느 정도는 왜곡된 교육의 피해자라고 평가한다.

 

책 <대한민국 부모>를 읽으면서 나는 나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나의 꽤 많은 활동들이 사실상 외부를 향해 있다. 초자아의 준엄한 명령이 나의 일상을 지배한다. 회사에서는 '팀장님과 후배 사원들과 소통과 협력에 애써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집에서는 '아내가 힘드니 내가 육아를 분담해야 한다' '부모님이 내가 크는 동안 애를 많이 쓰셨으니 내가 항상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 걱정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그런 류의 것들이다.

 

때로는 내가 쓰는 글이나 대화 시에 드러나는 나의 일정한 논리들에서도 그런 초자아적 억압은 투영된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니 그것을 위한 글쓰기에 노력해야 한다거나 여성이 피해자이니 내가 남성이지만 여성을 대변하도록 애쓰자거나 제3세계 사람들을 위해 공정무역 제품을 쓰려는 노력까지.

 

 

#3.

투박하게 정리하자면 나의 존재감은 초자아적인 어떤 규범을 충실히 지키고 그것을 칭찬받는 일에 전적으로 기대어 있다. '네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우리가 좋아졌어' '네 덕에 내가 행복해' 등 이런 말들을 은연 중에 바라는 마음이 있는 셈이다. 그것 또한 욕망이라면 욕망이라고 하겠다.

 

<대한민국 부모>에 나오는 남편들 중에는 죽도록 일하고 가정에서 외면당하는 이들이 있다. 약육강식의 직장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면 아내는 니가 집에서 도대체 하는 게 뭐냐, 모르면 가만히나 있어라 요즘 애들 교육이 쉬운 줄 아냐 라고 망발을 듣는다. 예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칭찬받던 '아들'에서 지금은 살벌하게 애쓰지만 원망에 비난받는 '남편, 아빠'가 된 자신을 본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외부를 향해 분투하는 에너지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인정과 칭찬, 존경과 관련돼 있고 이것들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외부로 향하지 않는 내 욕망은 무엇인가. 틈틈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고 IT제품들을 지르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본질적인 내 안의 욕망은 무엇일까.

 

대체로 부모는 '자신의 욕망'이 없기 때문에 가정이 왜곡된다. 40대에도 설레는 어떤 존재적인 욕망없이 칭찬 없는 의무들에 눌려서, 그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너무 허접한 대안들을 선택하는 건 아닐까. 자신들의 욕망이 없는 부모들이 자신 수준의 복제품을 만드는 일에 골몰하다가 자신과는 다른 존재인 자녀들을 망치고 스스로도 자멸하는 건 아닐까.

 

결국 나의 건강한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소하는 게 진정한 의미의 가정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저 유명한 김두식 교수의 책 제목을 빌려 말한다면 "욕망해'야' 괜찮아"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43371

2013/03/13 00:39 2013/03/13 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