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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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도서관 속의 "창백한 지성" (2000. 2.)
/ 김용주


"이런데서 책이나 실컷 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가까운 공과 대학원생과 함께 도서관을 갔다가 나오면서 내뱉은 그의 말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비전(vision)이라기 보다는 하소연에 가까운 말이었습니다. 대학원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그였기에 비록 그의 말이 저의 생각에 반(反)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끝내 마음 속에 있던 생각들을 그 앞에 속시원히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동상이몽이라 했던가, 함께 길을 걸으면서 저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들이 그의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도서관 안에 있을 거라면 책은 무슨 필요인가?'

그는 편안한 의자에서 지적 유희를 즐기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밖에 있는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문학과 사상이라는 심오하고 고풍스런 사고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타인에게 자신의 독서량을 자랑하며 상대의 지식을 자신의 화려한 문체로 누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까지 비약하지는 않더라도 도서관의 공무원처럼 앉아서 그 곳을 관장하고 틈틈히 책읽는 문화 생활을 즐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의 책 읽기가 그러 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의 짧은 대학 생활은 그야말로 독서를 위한 독서, 지식을 위한 지식쌓기에 골몰하였던, 철없고 목표없는 학생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영복 교수가 감옥 생활을 하던 중의 이야기입니다. 집짓는 일을 하던 노인과 대화할 일이 있어서 한참을 얘기하는 도중 그 분이 집을 그리는 것을 보고 신영복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고, 기둥을 그리고, 문짝을 그리고, 주춧돌을 그리는 것에 익숙해 있었지만 그 분은 바닥에 주춧돌부터 그림으로 집을 완성해 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신 교수는 그 분이 지붕을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그림이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면서 말하길, 아무도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만들지 않음에도 꽤나 '먹물'이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 기본적인 이해없이 집을 마구 그려내는 것이, 하나의 위선이었다는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그 무식하지만 "집그리기를 바로 하는" 노인을 통해 이제껏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지성, 그야말로 창백한 백면서생의 어설픈 지식을 자각하는 하나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현대는 책으로 지식을 얻는 일에 힘쓰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 달에 평균적으로 0.8권의 책을 읽는다는 최근의 통계를 접할 때, 우리의 지식과 목표들이 희미해져감을 의미한다는 것 또한 자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적 유희로서의 이른바 '도서관 속에 갇힌 창백한 지성'으로서의 책 읽기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독서가 종국에는 우리의 정서를 바르게 가꾸어 주고, 또한 탁월한 지적 업적들을 섭렵함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그 지식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어야 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더불어 그 지식의 소산들은 모두가, 정작 그 효용들을 누려야 할 당사자인 '사람'을 소외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진단처럼 생산물이 그것을 생산한 사람과 소외되어 결국 인간들 사이에 소외를 조장하는 냉정한 현대 산업화의 쓴 열매들을 거두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테크놀로지의 부작용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자문도 해봅니다. 신이 주신 삶과 그가 창조한 모든 창조물들이 서로 인격적으로 사귀고, 그 안에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의미에서의 지식의 진보와 향유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아닌가... 깊이있게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2000/02/01 00:52 2000/02/01 0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