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 관련 토론에 대한 IVP의 입장 (페이스북 글)
/신현기 대표
지강유철 선생님의 뉴스앤조이 글을 통해 소셜 공간에서 벌어진 토론을 지켜보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출판사로서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 독자들의 생각을 더 듣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IVP가 더 들어야 할 쓴 소리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매우 좋은 관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출판사는 독자들로부터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토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독자들끼리 서로 상처를 입는 모습은 저희에 대한 비판보다도 훨씬 저희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라도 저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1. 지강유철 선생님의 IVP에 대한 비판(토착과 참여를 강조하는)을 달게 듣습니다. 저희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극복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그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저희의 능력 부족과 게으름에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지강유철 선생님뿐 아니라 소셜 토론을 통해 나타난 여러 독자 분들의 애정 어린 혹은 따끔한 질책을 겸허히 듣습니다. IVP 살림을 오랫동안 책임 맡아 온 저의 생각은 동료 간사들에게 보낸 다음 글로 대신 피력합니다.
“나는 지강유철 님의 비판을 남에게 하는 비판으로 읽지 않는다. 기대했던, 크게 보면 같은 진영이어야 할 출판사에 대한 "자아비판"적 성격을 갖는다고 읽는다. 그랬기에 그가 글의 탄탄함이나 사실여부에 신경을 덜 썼을 것이라고. 그래도 ‘진정성’만을 읽어내는 것이 내겐 더 다급하다. 과거 우리의 아픔을 되새겨 볼 때, 소위 "우리 편" 안에서의 자아비판에 대하여도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
2. “IVP, 존 스토트만큼만 되어라”라는 지강유철 선생님의 일갈이 있었습니다. 어디 존 스토트뿐이겠습니까? 책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책의 내용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공적 개인적) 삶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늘 갖고 있습니다.
3. 많이 궁금해 하실 제목 선택 문제입니다. 독자들로선 당연히 자신의 관점을 들어 출판사의 선택에 대해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비판은 출판사에게 약이 됩니다. 따라서 누구라도 제목 문제로 저희에게 직접 문의하셨다면 벌써 소상히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저자의 글을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제목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아무리 대가의 제목이라 할지라도, 마지막 책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제목은 우리 상황과 독자들을 고려하여 만드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래서 제목 짓기야 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출판사도 원제를 자기들 마음대로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직역한다면, ‘급진적/철저한/근본적 제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제자도’를 선택했습니다. 무조건 많이만 팔겠다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 제자도’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독자일수록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들도 머리말 네 쪽만 읽으면 radical에 대한 저자의 뜻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존 스토트가 말하는 radical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을 이 책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닐 것입니다.
‘급진적 제자도’도 좋지만 어떤 수식어도 붙이지 않고 “날것 그대로” 제.자.도. 석 자를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더 강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는 있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둔 존 스토트가 제자도를 말한다면 과연 무엇을 말할지에 대한 궁금증 유발형 제목이 급진적 제자도라는 완성형 제목보다 더 흡인력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더구나 radical을 과연 ‘급진적’으로 번역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저희 역시 본문 안에서 그렇게 번역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 책은 원제가 The Radical Disciple이니 사실 몇몇 분들이 주장하시는 ‘급진적 제자도’ 자체도 ‘존경하는’ 그 분의 제목을 그대로 직역한 것은 아닙니다.
4. 지금까지 말한 입장을 조기에 밝히는 것이 뭐가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이번 지강유철 선생님의 IVP 비판은 사실과 다른 면을 단정하여 논거로 삼았다는데 문제가 있었고, 그것을 저희가 나서서 바로잡는 단순한 행위마저도 마치 저희가 지강유철 선생님의 애정 어린 비판에 대해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것처럼 비쳐질까봐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지강유철 선생님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그 논거로 삼은 사항들의 진위 여부를 말씀드려야 더욱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강유철 선생님은 IVP가 좌파 혐오증, 보수지향성, 상술, 심지어 윗선이나 데스크의 입김 때문에 제목을 세탁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들은 저희 역시 혐오하는 것들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살았느냐고 물으시면, 저희는 쥐구멍을 찾을 수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IVP 구성원들은 어찌 감히 OOO와 IVP를 비교할 수 있겠느냐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대목에서 IVP 지체들은 P스럽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판단의 잣대로 작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 친한 관계인 이웃 출판사를 보기가 민망해졌습니다. 찾아가서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우스워졌습니다. 물론 IVP 구성원 가운데 철없는 누군가 개인적으로 그런 말을 할 가능성마저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만, 85년부터 IVP에서 일해 온 저는 한 번도 그러한 태도를 지니거나 정책에 반영한 일이 없습니다. 물론 지강유철 선생님은 자신의 글 가운데 살짝 ‘가정’을 끼워 넣기는 했지만, 그런 글쓰기는 적지 않은 독자들에게 부정확한 것을 사실로 믿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농부는 쌀로 말하고, 요리사는 음식으로 말하고, 출판사는 책으로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낳아놓은 자식이 칠팔백 종이 되니 독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비판과 오해를 견디기 싫어 일일이 반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지강유철 선생님이 애정을 담아 말씀하신 것이니 경청하고 반성하며 결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왜곡된 사실로 인해 지강유철 선생님이 진짜 말하고 싶은 뜻에도 누가 되고, 토론 과정에서 독자들끼리도 마음을 상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족한 글이나마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판단착오가 있다면 가르쳐주십시오.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날카롭고 거센 토론은 계속하시되, 서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독자, 필자, 출판사가 공히 참여할 수 있는 진짜 ‘제대로 된’ 출판 비평과 도서 비평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면 하는 희망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