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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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가 시기인 만큼 광화문 촛불 집회가 한창이다. 집회가 있는 날이면 SNS를 통해 집회 소식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다들 비오는 날씨에도 고생이 많으신 듯). 이렇게 집회 자리에 있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올해 들어서는 집회에 참석을 못 했다. 작년 대선 때 몇 차례 시도해봤으나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움직이는 게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아이를 두고 가야 할 텐데 아내도 집회를 참석하고 싶어하므로 (다소 어색하긴 해도) 주말 육아를 전담하는 내가 아이를 맡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그렇게 나는 남고 아내는 집을 나섰다.

아내가 별 걱정하지 말라며 씩씩하게 떠나고 나면, 나는 집에서 아이와 만화영화 주제가를 같이 흥얼거리며 아내가 주중에 못다 한 집안 일을 하며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든다. 중간중간 아이가 밥 먹을 때나 놀이터를 전전하며 SNS에 올라오는 소식들과 기사들을 읽는다. 마음 깊이 공감하며.


황득순, 집에 남는 자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상이다. 예전 연재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초들이 들풀처럼 일어나길 기대하며 집회 장소를 누비던 함석헌 선생의 활동 뒤에 가려졌던 아내 황득순씨의 일상도 이랬겠구나 싶다. 나는 내 의지대로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았었다. 싱글일 때 혹은 아이가 없을 때 전혀 고민해보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들, 그로인한 선택과 그에 따르는 감정들을 대면해야 한다. 이렇듯 내 정서는 새 국면을 맞이한다.

물론, 조만간 아이가 클 것이고 우리는 가족 모두가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설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촛불을 들고 있는 것과 아이의 장난감을 들고 있는 것 사이에 경중을 따질 수 없다. 유사(pseudo) 페미니스트로서, 아내가 아닌 내가 반드시 촛불을 들어야 할 어떤 논리나 당위도 없다. 누군가는 집회의 자리에 서 있고 누군가는 그 시간에 야근을 하고 또 누군가는 집에서 '아무개의 엄마'로 가사와 육아를 돌본다. 때때로 사람들은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기도 할 것이고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신앙적인 정직한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을 위해 프란시스 쉐퍼가 만든 공동체인 라브리에 찾아온 수많은 청년들에게 지적인 대답을 주기 위해 노력한 쉐퍼 자신보다 예산 없이 매일매일 수십 명이 되는 청년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애간장을 태운 그의 아내 에디스 쉐퍼가 더 대단해 보인다. 또 함석헌 선생이 비운 집안에서 군소리 없이 "나야 뭐…"라며 쑥스럽게 가정을 보살핀 황득순 여사의 일상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엄밀히 말해 나는 고작 몇 차례의 시간 동안 아이와 집에 있었을 뿐인데 삶의 대부분을 그렇게 산 그(녀)들의 삶을 절절히 공감했다는 표현은 다소 '오바'일 게다.


행동하는 존재 Vs.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존재

솔직히 고백하건대 과거에 나는 집회에 나서지 못하면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그 반대 급부로 자연스럽게 집회 참석에 관심이 없거나 사회 문제 자체에 의식 없는 청년들에 대한 반감도 꽤 있었다. 그저 소심한 마음에 내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자리에 동참하는 것이 내겐, 그리고 내가 타인을 대하는 꽤나 중요한 이슈였다. 헌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뻔뻔하게도 이런 글을 쓸 정도로 '날라리'가 됐다. 그것도 함석헌보다 황득순을 더 강조하려는 논리까지 내세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런 내적 변화가 싫지 않다.

그날, 나는 아이와 칼싸움을 하고 그네를 밀어주고 저녁밥을 차려주고, 씻기고 재우면서도 SNS에 올라온 집회 사진과 글들을 보며, 어느 때보다 평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집회 장소에 있던 분들을 응원했다.

물론 나는 집회에 나선 이들이 다치거나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매순간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정에서 노심초사하면서 귀가를 기다리는 많은 이 땅의 '황득순 여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행동하는' 존재만큼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존재도 강조될 이유가 있다는 생각. 조금씩 생겨난다.

노심초사한 마음조차 생경한 밤 시간. 아내가 돌아왔다(휴…).
2013/09/16 23:09 2013/09/16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