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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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 변.

며칠전 어린이집에서 앨범 신청하라고 공지글을 보냈다. 앨범가격 무려 육마넌. 나는 그래도 하려고 했으나 아내는 상술이 엿보인다 하여 신청하지 않았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하는 활동이 고맙기도 하지만 아이의 아이다움을 저해한다는 생각도 든다. 일례로 어버이날 아이가 만든 카네이션에는 엄마 아빠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어쩌고 무슨 북한 방송 같은 이야기를.

우리 성하라면 아마도 아빠 똥꼬나 먹어... 내지는 아빠 스티커 다모으면 큰 장난감도 사줘야돼...같은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ㅋㅋㅋ 문제는 아이의 아이다움에 어른들이 윤리적인 덧칠을 해대는 것이다. 당연히 성장기에 대한 추억들도 천편일률적이다. 그저 수많은 아이들 속의 내 아이. 남들에게 처지지 않게 성장하는 내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성장보고서를 나는 경제논리에 따라 비용을 주고 구입해야만 한다.

내 어릴 적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어디에 살았고, 그 때 내 친구는 누구였고 나는 어릴 때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때부터 나라는 존재는 어떤 본유의 모습을 드러냈는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그런 자료는 없다. 그저 풍문 속에 전달되는 내 영유아기의 사건들. 그것조차 어른들의 가치관으로 채색된, '넌 어릴 때부터 착했지, 점잖았지, 공부를 잘했어...' 그들의 욕망에 기댄 평가들.

어차피 자료들은 자료를 선별하는 이들에 의해 왜곡되겠지만 나는 성하가 나중에 자신의 영유아기를 통해 엿볼 수 있는 특징들, 그리고 자라면서 경험한 환경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그것이 10-20대에는 별 의미없는 자료일 수 있겠지만 30대에는 스스로에게도 흥미로운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고유한 성격과 기질은 30대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10-20대에는 여전히 주변의 눈치(환경에 적응)를 보느라 본유적 성격이 죽는 것이다.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다. 얼마나 이 아이를 보호해줄 수 있나. 얼마나 이 아이가 편하게 고지를 선점하게 만들 수 있나. 그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정작 아이에게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만들고 자기 스스로 삶을 개척할 내적인 힘을 길러주는 게 아닐까. 부모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게 해주려면 부모와 사회의 가치관이 덧칠된 기성 성장앨범들이 아닌 부모의 눈으로 자세히 관찰한 내 아이의 특징들을 잘 기록해 주는 게 정작 더 중요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아이의 성장책 첫발을 내딛는다.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고심하며 뭔가 구조를 짜본 건 연애 이후 처음이다.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나쁜 케이스일 듯.^^ 뭐 이정도 생색을 내본다.
2013/07/13 00:20 2013/07/13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