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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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차 즈음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질 않았다. 오랜 시간 아이를 갖지 못한 분들도 많겠지만 1년 정도가 지나고 나니 마음이 참 초조했었다.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아이를 선물로 주시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아내는 다시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의 출산 계획은 다시 조금 미루었다.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작년 5월 즈음 아내가 무심코 해본 테스트에 임신이 되었다고 나왔다. 확신은 들었지만 상심이 클까봐 그 날은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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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처음 진료를 보는 날. 처음 찾아간 대부분의 여성은 이런 얘길 들었겠지만 아직은 확실치 않으니 1주 정도를 더 지켜보자고 한다. 초음파 사진 속 콩알 같은 점이 임신의 표지일지 아닐지 모른 채 간호사가 챙겨준 사진을 들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내와 돌아왔다. 그 일 주일 동안이 얼마나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되었던지 아내와 감질나게 주고 받던 대화들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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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뒤에 찾아간 병원에서 우리는 축하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초음파 속의 '너'는 어느덧 밤톨만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너'의 엄마와 나는 너의 태명을 [밤톨이]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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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 뒤에는 너의 튼튼한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 엄마의 몸에는 아직 큰 변화가 없는데 너는 그 속에서 마치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이 믿겨지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서 네 엄마와 심장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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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만삭이 되기 전까지는 초음파 사진 속에서 대부분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때때로 네 엄마와 나는 너를 두고 많이 놀려대곤 했지만, 병원을 찾아가는 날에는 네가 건강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는 미간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세상 모든 산모와 남편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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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초음파 사진으로 네 모습을 보던 날 너의 X자를 그린 손으로 인해 네 엄마와 나, 그리고 네 고모가 될 가족들과 친할머니를 무척이나 즐겁게 해 주었다. 덕분에 네 엄마는 네 3D 모양을 확인하러 몇 번 더 병원에서 정밀 초음파 검사를 해야 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얼굴을 놓고 누구를 닮았는지 한참을 이야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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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네 엄마는 너로 인해 입덧도 하고 몸도 무거워져서 점점 펭귄처럼 걸었다. 연애 초에는 몸무게나 몸매를 두고 놀리면 부부싸움이 날 뻔도 했는데 너를 품은 후에 네 엄마는 몸에 대해 놀리는 것을 나름 즐겼던 것 같다. 나도 임신한 아내의 모습이 결혼 전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평생에 잊지못할 말을 네 엄마는 해주었단다. 임신한 10달 동안 네 엄마는 참 행복했다고. 네 엄마가 내게 해 준 잊지못할 말 3위 안에 들 것 같다.

너를 출산하던 날. 네 고모부가 만들어준 두루치기를 먹고 네 엄마는 양수가 터져서 급히 병원에 갔다. 진통이 없어서 하루를 더 보내고 그 다음날부터 10시간을 아파하다가 너를 낳았다. 세상 모든 남편이 다 속이 타들어가는 시간이었겠지만 나는 마지막 3시간째에 네 엄마가 산소호흡기를 꽂고 호흡을 고르게 하지 못할 때는 너의 존재에 대해 잠시 원망을 하기도 했다. 아주 잠시지만.

나는 출산 전후의 사람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정말 출산하는 자리에 산모와 함께, 비단 네 엄마 뿐만 아니라 다른 산모들도 함께 대기실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모든 엄마들이 새삼 위대해 보였다.(나쁘게 말해서 불쌍해보이기도 했다.) 특히 예전에는 당연히 받았어야 할 보살핌조차 받지 못한 내 어머니를 포함한 그 세대의 산모들에게도 더 그러했다. (그래서 네 할머니에게 다시 한 번 감사했단다. 마음만이 아니라 직접 말로 표현을 다시 했다.)

솔직히 네가 태어났을 때 그래서 탯줄은 달고 있는 네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네 모습보다 너를 보고 웃는 네 엄마의 모습 때문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너를 보았다. 눈은 부어서 속에 사탕이라도 담고 있는 것 같았고 다른 아이들 처럼 우렁차게 잘 울지도 않아서 걱정도 되었지만 무사히 나와 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너를 낳고 회음부를 꿰매고 돌아온 아내와 처음 너를 맞았을 때, 너는 목욕을 못해서 그런지 너에게서 갈비집에서 회식하고 나온 사람의 냄새가 났다. 특히 머리에서. 그날 저녁 밤늦게 곤히 자고 있는 네 모습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봤다. 신기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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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었다. 성하(性河). 아직은 익숙치 않아서 자꾸 밤톨아 하며 너를 부르지만 곧 네 이름이 우리에게 친근해질거다. 네 엄마는 첫날 너한테 '동하야' 했다. (동하는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상국이형/종임 커플의 얼짱 아이 이름이다.)

성하야. 세상 모든 부모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과정을 거치고 같은 말을 하겠지만 나도 너의 출생을 비슷한 언어와 비슷한 과정으로 표현해서 미안하다. 너를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은 요동치고 설레인다. 이 속사람의 '흔들림'을 무슨 말로 적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너무나 바라던 선물임을 감사 또 감사한다.

하지만 네 출생의 주역이지 이 모든 잔치의 축하받을 주인은 네 엄마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네가 너무 예쁘고 연약해서 나를 포함한 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하물며 당사자 본인조차-너에게 관심을 쏟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수고했다고, 사랑한다고, 더 아껴주겠다고 말해도 모자랄 네 엄마를 너도 너의 출생일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2009/01/08 23:09 2009/01/08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