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 안과 밖 (2001. 5.)
/ 김용주
밖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장대비가 온 땅을 삼킬 듯이 퍼붓고 있습니다.
이중 창문 닫아걸고 현관문 걸어 잠그면 아득한 바깥
비 소리에 젖어 드는 원두커피 향이 감미로운 아늑한 실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가스펠을 즐기며
지금 이 순간 바깥에 있지 않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불안한 축대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어느 집 허름한 지붕을 뚫고 떨어져 내리는 빗물 소리,
이리 저리 휩쓸리는 풀잎들, 벌레들의 비명 소리는
그저 이중창 바깥의 소리일 뿐입니다.
불어난 빗물이 어느 동네 낮은 집들을 삼키는 모습,
비에 젖은 신문지를 이불 삼아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의 모습
늦은 밤 고단한 몸 흠뻑 젖어 퇴근하는 이웃들의 모습은
다만 현관 철문 바깥의 풍경일 뿐입니다.
지금 밖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고슬고슬한 이불을 깔며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단지, 내일 아침 출근길을 염려하며 잠을 청합니다.
(기진호, "안과 밖")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버스에 기댄 채 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까...열린 창문 사이로 새차게 불어오는 바람과 시끄러운 소음이 피곤함에 못이겨 자고있던 저를 깨웠습니다. 아마 앞에 계신 분이 환기를 시키려고 문을 여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두 뼘이 채 안되는 공간이 열리면서 차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고요한 정적을 깨고 창밖에서는 다른 차선에서 달리는 자동차 소리, 경적소리, 행사를 하고 있는 장소의 스피커폰 소리들로 요란해졌고 무엇보다 안락하게 느껴졌던 제 자리는 도저히 앉아서 견디기 힘든 속도의 바람이 정면으로 들어오는, 그야말로 버스의 속도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문득 내 삶의 형편과 버스 안의 내 자리가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일들과 가치들, 그리고 삶으로 담아내야 하는 내 주변을 간과한 채로 평안을 누리고 있는 나의 일상에 대한 반성을 해봅니다. 하루를 살면서도 내가 선호하는 책으로 눈을 가리고 내 입맛에 맞는 음악으로 귀를 막고 내가 원하는 장소들로만 걸음을 옮기는, 보고싶은 것만 보고 느끼고 싶은대로 느끼려는 어리석은 편협함이 어느덧 삶의 한 가운데 깊게 뿌리내려 있음을 봅니다.
너무나 시끄러운 요즘입니다. 두 뼘 남짓한 창문을 열면 안락하지 않은 상황(context)이 즐비합니다. "비 소리에 젖어 드는 원두커피 향이 감미로운 아늑한 실내"에서 "은은한 가스펠"에 평안을 느끼기에는 너무도 치열하고 절박한 "밖"(外)이 있습니다.
새차게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또한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와 바깥 소음들을 들으면서 그동안 없다고 생각했던 주변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시하고 살았던 상황들을 기억해 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중창 바깥"으로 나아가서 "이 순간 바깥에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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