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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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새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성하랑 자려고 누웠는데 번개가 번쩍 하자 성하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게 뭐야?"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어, 사진찍을 때처럼 번쩍하지? 아빠랑 같이 사진찍자"라고 둘이서 사진찍는 흉내를 냈다.

옆에서 듣던 아내가 그게 무슨 사진찍는 거냐며 아이에게 거짓말한다고 어이없게 웃더니 "성하야,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쿵쿵 소리나는 건 구름들이 서로 박치기를 해서 그래. 구름이 쎄게 박치기 하면서 번개도 치고 천둥소리도 나는거야"라고 설명한다. 성하는 한동안 별 반응이 없이 누워있었고, 그렇게 여러차례 천둥번개가 쳤다. 난 그게 뭐 대수냐며 같이 멍하게 누워 있는데, 성하가 가만히 천둥번개 소리를 듣다가 "구름이 너무 많이 박치기 해서 머리에 피나겠다"고 혼자 웃으며 말했다. 아내와 나도 더불어 웃었다.

의식하지 않은 채 그냥 내뱉는 말들이 아이의 동심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교정'은, 3살난 아이가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웃긴 말로 떼우려는 내 가벼운 생각 이상으로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걸 깨닫는다. 사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른들이 그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적 생각들을 가로막는 일들이 비단 이뿐이랴. 아이에게 아내같은 엄마가 있어 참 감사하다.


(페이스북 2011년 8월 17일)
2011/08/17 23:27 2011/08/17 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