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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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 중 기억에 남는 한 장면.

미하일 바르시니코프가 캐리의 남친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 남자는 예술가이면서 자아가 강한 사람이다. 결국 캐리와 헤어지게 되는데 연애하는 내내 그는 자기 중심적으로 관계를 끌고 간다.

...이 얘길 하려던 건 아니고.

그가 오랜만에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관객과 평론가들의 반응이 은근히 걱정된다. 항상 자신만만하지만 애인인 캐리가 가까이에서 볼 때 이 남자도 평가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전시회장에 들어가기 직전 그는 캐리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힘이 되어달라고. 캐리는 자신의 모임도 취소하고 그의 손을 잡고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누군가가 바르시니코프를 발견하고 멈칫 선다. 어떤 반응일까 긴장되는 순간 그는 천천히 바르시니코프를 향해 찬사의 박수를 치고 대가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의 천재성에 박수를 보낸다.

걱정했던 그의 표정은 이내 밝하지고. 그는 언제 사람들의 평가를 걱정했냐는 듯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캐리와 잡았던 손을 놓고는 박수치는 군중들 속으로 들어간다. '대가'를 위한 파티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만큼, 창작을 하는 인간이 대중을, 비평을 대하는 태도, 그 욕망을 잘 드러낸 묘사는 없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에 뭔가를 만들고나서 친구나 부모,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고, 그 잠시잠간의 긴장감 이후에 반응이 좋으면 우헤헤헤 거리는 태도가... 나이가 들어도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가끔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어떤 순간 이게 무슨 글이야... 조졌다...라는 생각에 원고를 보내기를 주저한다. 예전엔 가까운 지인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기도 했고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보여주면서 은근 눈치를 살핀다. 아내의 미간이 찡그려지면 "아놔.. 나 다시 쓸라그랬어!!!"라고 먼저 막 오바한다.

그렇게 마감에 등떠밀리듯 보낸 원고가 어딘가에 공개되고, 의외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내 태도는 급 돌변한다. 겉으론 무표정하게 있지만 내심 촐랑거리고 싶은 것이다. 가끔 아내에게 사람들의 반응을 홍보하며 음하하하...거리며 놀기도 한다. (아내랑 종종 이러고 자주 논다..ㅋㅋ)

늙어도 철들지 않는.. 어떤 뛰어나고픈 존재감. 칭찬받으면 우쭐거리고픈 속내. 순식간에 뒤바뀌는 '소심함의 극치'와 '자만의 극단' 사이를 포착하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이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이런 게 폭로되는 내러티브가 참 좋다. 부족함, 허물을 고백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있어서 좋다.

땡큐, 미하일 바르시니코프 옵바.
2013/09/13 23:25 2013/09/13 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