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 순수함'은 변하지 않을 때 아름답습니다 (2000. 8.)
/ 김용주
조카가 난 지 6주 정도가 지났습니다. 한 식구가 더 늘어난 이유로 집안은 전보다 더 분주해진 요즘입니다. 천진난만한 조카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전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생명에게는 많은 주의가 필요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아울러 지금의 나 자신이 스스로의 공덕이 아닌 어머니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바로 설 수 있었음을 돌아보면, 그 동안 가졌던 저의 짧았던 생각들에 얼굴이 절로 숙여집니다.
요사이 자주 조카녀석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합니다. 어쩌다 함박 웃음을 지을 때면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다 지닌 듯, 세상의 순수함은 모두 그 아이가 가진 듯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와 동시에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어지럽게 스쳐갑니다.
그 웃음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다름 아닌 세상과 격리된 그 아이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어떤 것'이기 때문에. 그 아이가 자라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장성하여 세상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되어도 그 웃음이 한결같길 바라는 조바심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조카가 그 웃음을 지켜가기엔 삶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은 이유에서입니다.
"참 순수하던 사람이었는데..."
관공서에서 군복무를 하던 때에, 갓 승진한 동료 직원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다못한 주변 사람들이 내뱉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특유의 낙관적 생각들이 무너지고,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 처음의 좋은 모습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일은 정말 너무 힘들고 현기증을 느끼도록 마음이 상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 사람과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순수함이었나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그렇다면 순수함은 한 사람이 사회에서 군림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지 않을 때에만, 그가 아무런 악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그런 낮은 자, 여리고 힘없는 자의 위치에서만 유지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자신없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그건 아니라는 의미의 고개를 저어 봅니다.
조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 보며 이 아이가 평생을 창조주가 이 땅에 보내신 뜻대로, 그 분의 형상대로 이 척박한 땅에 두 발을 굳게 딛고 살아가길 바라는 기도를 해봅니다. 또한 이 아이가 자라서는 좀더 좋은 터전에서 나의 세대보다는 더 좋은 여건에서 살 수 있도록 지금부터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해 봅니다. 선한 경주를 마치고 조카와 마주서서 서로의 변치않는 웃음을 보여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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