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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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골룸(Gollum)이다. 물론 <반지의 제왕>영화 전체에서 보여준 인간에 대한 톨킨의 전반적인 이해와 표현은 나에게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는, 선악의 구분이 너무 극명한 헐리우드 액션 영화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냄새가 물씬 풍겨서 누가 누구 편인지도 모르도록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요즘 영화의 흐름과도 구별되는 무엇이 나에게 큰 호감을 가져다 준 것이리라.

톨킨(J. R. R. Tolkien)은 인간의 이중성에 초점을 맞추는 듯 하다. 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두 가지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속적으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과 그 사이에서 진행되는 사건이 잘 맞물려 있는 <반지의 제왕>은 거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2편에서 등장한 골룸이라는 캐릭터는 그런 인간의 이중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인물이다. 처음 반지를 가지고 있었던 골룸은, 베긴스에게 잃은 반지를 가지고 다시 나타난 프로도에게 접근한다. 프로도는 골룸의 사정을 알고 동정심을 느껴서 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반지원정대의 여정에 그를 동반하게 만든다.

골룸은 두 개의 인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비교적 선한 생각을 하는 "스미이골"이라는 캐릭터가 평소에는 판단을 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내면에 숨어있던 골룸이 악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스미이골의 내면을 물들이게 된다. 영화에서 스미이골은 골룸의 부정적인 생각에 강한 지배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자신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준 프로도를 보면서, 스미이골은 갈등을 하게 되는데 골룸의 강한 반박에도 불구하고 스미이골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프로도를 주인으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자기의 내면에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는 골룸을 내면에서 몰아낸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적 치유"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내면의 상처는 "거절감"에서 오는 것이 많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이나 집단으로부터 거절 당하고, 소외되어 종국에는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며 이는 지속적으로 내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결과 이후의 삶에서 쉽게 상대방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되고 항상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거절감"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상대를 먼저 거절하거나 관계 자체를 환멸하게 된다. 스미이골 안에 살고 있는 골룸처럼.

한편, 이런 상처 안에는 항상 두 마음이 존재하는데 하나가 그런 관계에 대해 부정해버리는 것이라면 또 다른 마음은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프로도는 스미이골의 마음을 열었다. 그는 칼을 칼집에 집어 넣고 올무를 풀어주고 그에게 친구의 자격을 부여했다. 그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흔히 거절감에서 오는 상처는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게 되면 치유가 된다고 말한다. 대부분 그것은 사실이다. 단, 그 사람이 온전한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

무엇보다 내가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라는 캐릭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은 그 뒤의 이야기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골룸의 내적 치유가 완전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프로도가 완전하지 않다는 데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때때로 상황은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기도 하고, 좋았던 관계가 다시 냉랭해지거나 상대방에 대한 불신의 씨앗을 자라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거기에서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내면의 쓴뿌리는 다시 자라난다. 오히려 전보다 더 무성해질 수도 있다. 골룸처럼.

골룸을 보면서 너무 흥미로운 나머지, 나는 이후 부분을 원작을 통해 보았다. 골룸은 남은 이야기 내내 샘과 프로도를 불신하게 된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처음 내면에 각인된 상처는 치유의 과정을 거친 후에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골룸의 목소리를 견뎌내야만 한다. 때로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겨내기도 하고, 짓밟아버려서 내 안에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또다시 어느덧 내 안에서 다시 들려오는 부정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내 상처가 치유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곤 한다.

어쩌면, 골룸의 모습은 불완전한 나의 내면의 모습인지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모습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  
2007/04/08 18:08 2007/04/08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