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트루먼 쇼"라는 영화를 보았다. 오랜만에 참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뿌듯함이 있었는데, 영화의 시나리오 발상이 기막히기도 했고, 짐 캐리의 연기변신(?)도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아직 못 본 이들에게는 권하고 싶은 영화다.
그러면, 트루먼 쇼에 대한 나의 어설픈(?) 이야기를 조금 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주인공 트루먼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트루먼 쇼"에서 보여지는 세트장은 철저하게 고립되어져 있고, 수많은 카메라가 트루먼의 위치와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그는 세트장 시설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교육"받았고, 여전히 암묵적 통제를 받고 있다.
이쯤 되면 미쉘 푸코(Michel Foucault)가 <광기의 역사>나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말한 "감금 사회"가 떠오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나의 관점: 푸코의 "감금 사회"
푸코는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사회 질서유지의 그 근본뿌리를 "교도소"에서 발견하게 된다. 현대 사회 기구들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는 교도소의 운영방식을 알아보면 당장에 드러나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들-현대 사회의 많은 조직들, 이를테면 병원, 학교, 공장-의 억압적인 형태는 감옥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율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법자들을 외부 세계와 차단해, 감금시켜 놓고 , 엄격한 감시와 규율로 교정하는 방법을 학교, 병원, 공장과 같은 다른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푸코의 이론에 따라 영화를 살펴보면 현대인을 외부세계와 차단해, "감금"시키는 것은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는 세트장을 통해서, "엄격한 감시"는 24시간 동안 끈질기게 트루먼을 찍고 있는 수백 개의 몰래 카메라를 통해서, 그리고 현대인들의 몸을 통해 통제를 강화하려는 "규율들"은 어릴 때 아버지를 물에서 죽게 만든다든지, 학교에서 세계 여행에 대한 트루먼의 꿈을 좌절시키려는 일련의 교육들과 무의식 중에 습득되는 수많은 광고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트루먼 쇼"를 푸코의 이론에 비추어 본다면, 세트장은 "교도소"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억압된 현대사회"를 의미하고, 트루먼은 그 곳에서 온갖 감시와 규율로 통제되는 현대인을 의미한다고 적용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의 뒷 부분에서 트루먼은 세트장을 벗어나는데 성공하는데, 아마 그것의 상징적 의미는 "광기의 재생"정도가 아닐까 한다.
또다른 관점: 세상이 보는 유신론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도록 하자.
이번에는 종교에 대한 상징으로 영화를 보면, 트루먼은 창조된 피조물로서의 인간이고 쇼의 세트장은 신이 직접 다스리는 유토피아다. 물론, 그렇다면 트루먼 쇼의 프로듀서는 창조자, 즉 신이다.
신은 진실만 보이도록 통제된 이상적인 세상을 창조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여 자신이 계획한 세상 가운데 살게 한다. 신은 자신의 치밀하고, 이기적인 계획하에 인간을 통제하고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그것이 종국에 가서는 인간에게 유익이 된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신의 구체적인 의도대로 직장을 가지고, 배우자를 얻고, 인간관계와 주거지의 선택까지 일방적으로 강요 당한다. 모든 것이 그의 섭리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신의 계획 하에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유아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트루먼 쇼는 신의 통제로부터 자유하고 싶어하는 인간 의지의 발현이라는 관점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긴장점은 신이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가하는 "통제"와, 안전과 평안을 버리고서라도 얻고 싶은 "통제로부터의 자유"에 있다.
짧은 기독지성 비판
최근에 몇 편의 영화를 통해서 느낀 것이지만 세속이라 부를 수 있는 세상의 지성은 기독교 세계관을 심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 지성인들이 80~90년대에 배웠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하여 그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적절하게 혼합한-사실 이 혼합 자체가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이기도 하다-형태를 가지고 기독 지성인들에게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매체가 딱딱한 논문이나 연구서가 아닌, 시각효과가 뛰어난 영화와 같은 미디어라는 것이 더 현대 사상 흡수에 있어서의 용이한 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상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한 실정이 아닌가!
현대 사상에 대한 새로운 기독교적 변증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푸코의 이론에 대한 내용의 일부는 조흡 씨의 "푸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인용했다. 그리고 위의 내용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지, 영화 자체가 원했던 메시지와는 관련이 없을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이 글은 푸코의 이론과 기독교 지성의 자성(?)을 위해 어설프게 쓰여진 글임 또한 밝혀둔다.)
1998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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