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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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논쟁
Did the Resurrection Happen?
앤터니 플루, 게리 하버마스 지음|데이비드 바게트 편집

 

 


내가 기독매체에 처음 기고했던 글은 누군가가 쓴 글에 대한 반론이었다. 그 때가 1999년이었는데, 당시는 강준만 교수가 “인물과사상”이라는 일인저널룩을 통해 한국 보수진영 인사들과 매체들에 대한 이른바 ‘실명비판’을 활발하게 시도하던 시기였고, 이제 막 유명해진 진중권이 내게 아이돌 스타만큼이나 멋있어 보이던 때였다. 나는 한동안 잡지에 실린 그의 논쟁 글이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같은 책들을 읽으며 그의 글쓰기 스타일을 따라 했고, 매체에 기고한 나의 첫 반론 글에는 자연스럽게 논쟁을 유발하는 냉정한 스타일이 묻어났다. 나는 그 글로 인해 온·오프라인에서 몇 차례 더 논쟁을 주고받았고, 그 일을 계기로 이후 몇 년 동안 교계 온라인 논객 ‘행세’를 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건대, 처음 원고를 쓰던 날 상대에 대해 공격적인 표현을 쓰면서 한편으로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심약한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려 글을 쓴 후에도 잠을 설쳤다. 많은 논쟁을 겪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진중권의 그것과는 다른 내 스타일을 찾아갔는데, 특별히 교계 논쟁은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로 한 몸 된 지체 안에서 주고받는 것이므로 더 신중하게 사랑으로 행해야 함을 절감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논쟁」은 가히 우리가 배워야 할 명품 논쟁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이 책은 무신론자의 대표 격인 앤터니 플루 교수와 예수 부활에 대한 역사적 논쟁의 전문가인 게리 하버마스 교수가 베리타스 포럼에서 진행한 세 차례의 논쟁 중 마지막 논쟁을 담고 있다. 하버마스 교수와 플루 교수는 1985년에 한 컨퍼런스에서 만난 이후로 우정을 쌓아 왔고, 그런 신뢰 속에서 세 차례에 걸쳐 논쟁이 이뤄졌기에, 이들의 논쟁은 태생적으로 양질의 토론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며 진지하게 경청하는 논쟁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이 논쟁에서 하버마스가 토론을 거의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이 논쟁은 2003년 1월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행해졌고, 이듬해에 플루는 유신론으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이와 관련한 대화를 녹취하여 출판했고, 그 내용은 이 책의 2부에 실렸다.) 또한 플루는 2007년에 에이브러햄 바기즈와 「존재하는 신」을 출판하면서 무신론에서 이신론으로, 다시 유신론으로 입장을 바꾼 자신의 지적 여정을 풀어냈으면서 이 책은 관련된 논의를 지켜보던 많은 이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플루의 지적 여정을 돌이켜볼 때, 이 책에서는 하버마스가 우세하게 논쟁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 책을 마치 ‘유명한 무신론자와 싸워 이긴 유신론의 승리’에 관한 책으로 독해하면 안 된다. 여전히 많은 무신론자가 유신론에 대한 회의와 심한 조롱을 일삼고 있으며, 유신론도 ‘젊은 지구 창조설’이나 ‘지적설계 이론’으로 말미암아 학문적으로는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 오지 않았는가. 또한 플루의 고백처럼, 그는 ‘레알’(real) 기독교로 회심한 것이 아니며, 여전히 계시를 믿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노년의 무신론자가 회심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유신론에 대해 열린 자세를 견지한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도리어 폄하하는 기독교인들도 종종 있는 듯하다. 이런 이들은 무릎 꿇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하지 않는 한 기독교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비전문가로서 조금만 생각을 덧붙인다면, 나는 플루의 회심이 학계나 일반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고 본다.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앤터니 플루는 큰 의미가 없는 이름이겠지만, 무신론자들에게 플루는 중심적인 인물임에 분명하다. 특히 1950년에 발표한 「신학의 위증성」은 현대 무신론의 방향성으로 작용했다고 평가되며, 「신과 철학」, 「무신론 추정」은 무신론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플루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이 여간해서는 따라잡기 어려운 무신론 논쟁의 학문적 추이를 경험하게 된다. 일례로 이 책의 부록에 실린 데이비드 바게트의 “부활의 의의”를 읽어 보면 늪에 빠진 기분이 들 것이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저작으로부터 시작된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유신론 비판과 창조, 진화 논쟁에서 언급되는 ‘틈새의 신’, 지적 설계 이론, 방법론적 자연주의, 과학주의 등을 이해하려면 과학철학사 전반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데이비드 흄의 기적에 대한 반대 주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리처드 도킨스와 샘 해리스로 대변되는 ‘신 무신론자’들의 저서, 그리고 하버마스의 ‘최소한의 증거’에 대한 입증과 비판에 동원되는 역사적 예수 논쟁에 이르기까지, 실로 비전문가가 다루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깊이와 넓이의 논의다. 그런 의미에서 (유신론은 실상 현대 학문적 풍토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지만 플루의 ‘변절’이 다시 이 논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는 그의 불완전한 회심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그가 쓴 「존재하는 신」의 후반에는 로이 에이브러햄 바기즈의 신 무신론 비판과 톰 라이트의 역사적 예수에 관한 대화가 실려 있다. 관심 있는 이들은 이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가장 큰 유익은 오랫동안 무신론의 학문적 여정을 걷던 노학자가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의 학자와 오랜 시간 격을 갖춰 논쟁을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해 나가는 모습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불행히도 나는 논쟁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 가운데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한두 번은 있었겠지만, ‘뜨거운 감자’와 같은 사안을 두고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글의 초반에 언급했던 강준만의 “인물과사상”이 많은 논객을 양산했지만, 그들은 2000년대 초반에 ‘안티 조선운동’으로 뭉쳤다가 노무현 정권 후 뿔뿔이 흩어졌다.

 

내 기억에 당시의 논객들은 서로 교제도 나눴는데, 그들이 지나치게 호된 비난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흩어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한때 나도 논쟁에 대한 ‘쿨’한 룰이 있었다. ‘깔 때는 살벌하게 제대로 까주고 당하고 나서도 내가 틀렸으면 깔끔하게 인정하자’는 것. 문제는 깔끔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안이 그리 많지 않고 (‘너도 말실수 했잖아’ 식의) 인신공격이나 상호 비방이 이어지면 그 사람에 대한 불쾌감을 떨칠 수 없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 논객 강준만이 요즘 자신이 그렇게도 비판하던 양비론을 글쓰기 전반에 내세운 것이 못내 아쉽지만, 오랜 논쟁으로 인해 어떤 입장을 떠나 인간 자체에 대한 환멸이 그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가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존 스토트가 영혼소멸설을 주장했다는 얘길 들었을 때 누군가가 ‘그 영감 이제 노망이 나셨군’ 하고 썼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지인의 글에 ‘이런 글 안 쓰려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댓글을 쓴 이도 있었다. 정해진 종교적 룰에 따라 쉽게 ‘형제’ ‘자매’라고 부르지만, 신뢰를 잃지 않는 가운데 상대의 입장을 비판하는 훈련은 우리에게 여전히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런 연유로, 치열한 논쟁을 위한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가 될 것 같다.(끝)




*IVP 북뉴스 2012년 5-6월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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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1 01:49 2012/10/21 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