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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성매매특별법상 자발적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즉각적으로 양분된 반응이 쏟아졌다. 성매매 관련해서 하고싶은 얘기가 없지 않았는데 이참에 관련된 생각들을 조금 해볼까 싶다.


성을 매매할 수 있는가
원론적인 쟁점은 성이 매매 가능한지 여부다. 집창촌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우리가 원해서 성을 팔겠다는데 국가가 왜 개입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 자발적으로 성을 매매하겠다는 것에 대해 법적 규제가 정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성매매는 간통과 달리 돈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넘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고 여성들이 성매매에 뛰어들지 않게 하는 교육·복지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고려대 하태훈 교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거래가 가능한 것 아닌가 어떤 억압적인 이유가 아닌 자발적 매매에 대해 국가가 내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있는가의 문제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들이 매매가능한가. 일례로 개인의 장기매매는 어떨까. 내 콩팥 하나를 팔아서 수익을 얻는 행위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장기매매와 성매매는 몸의 일부를 물리적으로 떼어주느냐 몸으로 노동을 하느냐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모든 매매의 자유에 대해 재고할 지점이 있다는 점 정도를 고민할 부분이다.


세계적 성매매 현황: 집단, 산업화 VS 개인 대 개인
세계적으로 성매매의 입장은 어떨까.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주, 스위스, 독일,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터키, 네덜란드, 헝가리, 미국 네바다주, 멕시코, 벨기에는 공창제(성매매를 직업으로 인정)를 시행하고 있고 잉글랜드, 아일랜드, 이스라엘, 캐나다, 폴란드, 핀란드, 스페인은 자치주의(국가가 성매매에 관여하지 않으나 인신매매, 호객행위는 규제함)이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스웨덴,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예멘, 파키스탄 같은 국가들이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입장은 어떤 지배적인 입장이 있지 않고 그 지역, 문화,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의 입장도 있다 . 한국처럼 성매매가 대규모 산업화한 나라에서 아무 전제 없이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으면 성매매가 더 창궐할 가능성이 크고, 이를 사생활의 자유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서울대 양현아 교수) 또한 한국의 성매매는 서구처럼 개인 간 일대일 거래 행위가 많지 않고 집단화·산업화한 양상이 지배적인 만큼 이런 식의 법적 판단(성매매의 합법화)가 성 산업만 키우는 꼴이 될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중앙대 이나영 교수) 충분히 공감할 만한 생각이다.


성노동자들의 인권 VS 여성 인권
또하나의 쟁점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여성인권과 성노동자들의 인권의 대립이다. 본질적으로 성매매는 남성중심 사회구조에 기인한 비정상적 노동수단이다. 남자들의 퇴폐 밤문화 속에서 보다 하드코어적인 자극을 충족시켜줄 대상으로 자신의 반대성을 가진 인격을 상품으로 대접받겠다는 욕망이 내재해 있는 셈이다. 당연히 이러한 매매구조에 여성이 동의할리 만무하다. 한 진보 여성단체 관계자는 "자칫 성 판매를 노동으로 인정하고 용인하자는 식이 될까 조심스럽다"며 "성매매를 여성 인권이나 건강권 보호가 아닌 노동권 보호 측면에서 보는 것은 여성계에서 아직 논란이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반대의 입장은 성노동자들 스스로의 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순간 한국사회에서 성노동에 연루된 상당수의 여성들은 법의 사각지대 안에 놓이게 된다. 성매매를 하고도 화대를 받지 못하거나 모텔에서 몸이 강제로 묶인 채 폭행당하고 성관계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업주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도리어 성매매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해서 무마되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집창촌의 경우도 경찰이 실적이 필요할 때마다 닭장의 닭 잡아가듯 한마리씩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고 집창촌 여성들이 하소연한다고 한다. 일반 여성들은 원론적으로 옳지 않은 성매매구조 자체를 문제 삼지만 실제 사회 안에 성노동자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하게 되고 성노동을 그만둬야만 정상여성으로 인정된다. 그전까지는 성노동자 여성들은 여성들 세계에서는 타자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김두식 교수의 인터뷰에 응했던 김연희씨의 증언들을 곱씹어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밀사와 함께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GG) 활동도 하고 계시죠? 지지는 어떤 단체죠?"/ “2004년 성노동자들의 시위를 보고 충격을 받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여성주의자들이 성노동자 운동과 연대하고자 성노동 세미나를 시작했어요. 그 연속선상에서 만들어진 게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예요. 운동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밀사가 성노동 실험이라는 사고를 쳤고, 그 소식을 들은 지지 쪽에서 바로 밀사를 접촉했죠. 밀사가 지지 활동을 함께 하자고 저에게 제안했고요. 지지는 제가 집창촌에서 보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과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어떻게 달랐죠?/ “그 전에 집창촌을 찾아오던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우리가 남성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서 ‘너희는 여기서 벗어나야 해’라고만 했어요.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일하는 우리에게 ‘너희는 강간을 사고파는 거야’ 뭐 그런 이야기나 하니까, 듣는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했죠. 쌈리(평택의 성매매 집결지)에 있을 때는 업주들이랑 아가씨들이 아예 ‘여성단체 출입금지’라고 써 붙였을 정도예요. 그런데 지지 사람들은 ‘성매매가 현재 불법이기 때문에 폭력을 당해도 피해를 호소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 줬어요. 일상에서는 듣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들이었어요. 우리가 일하는 상황에 대해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활동을 함께 하게 됐죠.”


덧붙여서: 성의식. 성해방, 성매매
이렇듯 성매매는 다중 가치관이 개입된 사회문제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한 가지만 더 짚고 싶은 부분은 '성의식'에 대한 부분이다. 여성인권은 과거대비 최근들어 급격히 신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여성의 성평등 문제는 미니스커트와 같은 페션에서부터 최근 '잡년행진'(SLUT WALK)까지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확산되는 추세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성해방운동은 여성의 피임기구가 발전하면서 임신을 전제하지 않은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욕구와 그 실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문제는 성해방, 프리섹스주의와 시기적으로도 오버랩될 뿐더러, 여성문제를 다룰 때 성적인 요소들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성문제에 있어 주장하는 목소리의 결이 일치할 때가 많다. 허나 국내에서 여성 불평등 문제는 여성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지만 성해방이나 동성애 문제로 들어가면 대다수가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곤 한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한국사회에서 보통의 여성들이 실제 보수적인 성의식을 가지고 있고 특히 그중 기독교인은 혼전순결을 중요시하고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한 억압, 무분별한 성관계와 같은 성해방 이슈에 부정적인 입장이지 않은가.

여기서 내가 불편한 지점은, 성매매 문제에 있어 이러한 성의식이 성매매의 윤리잣대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수의 여성이 사회구조적으로는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의 직장문화, 유흥문화, 성불평등 문제 등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성노동자로서의 개별 여성에 대해서는 사회일반적인 보수성을 - 남자와 잦은 성관계를 가진 여성은 더럽다, 성매매 여성은 정상적인 여성이 아니다  류의 - 계승한다.

남성의 성매매 여성에 대한 시각이 이중적이라면 - 성매수의 수혜자면서 사회적으로는 성매매의 대상을 더럽다고 혐오하는 - 여성들도 성노동자에 대해서는 이중적이긴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성노동자들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성노동을 강요받는 피해자로 인식하지만 실제 노동자들과 대면할 때는 그들의 선택을 비난하고 법적인 처벌에 찬성하는 것이다. 또한 정서적으로 성노동자에 대한 더럽다는 인식을 여성들 스스로도 하는 듯 하다.

따라서 진실로 내가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런 것이다. 여성 성노동자들에 대한 일반 여성의 인식이 다분히 보수적인 사회인식에 편승한다는 것, 이는 결국 성을 사고파는 이른바 성을 상품으로 규정짓는 인식 이상의 윤리적 잣대를 성노동자라는 타자(대상)에 투영한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상대적으로 남성 성노동자에 대해서는 '더럽다'거나 '걸레같은 년(놈)'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혹은 보수적 가치에 의해 성노동자들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유별나게 불결하고 더럽고 해서는 안되는 극단적 행위로 매도하는 데에는 그 잣대가 '매매행위' 자체에 있지 않고 '일대다의 섹스행위'에 대한 윤리의식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하다못해 장기 매매를 하는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분노함과 동시에 동정의 대상이 되지만 성매매를 하다가 죽거나 폭행당하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보다 가벼히 여기거나 성노동을 하는 여성의 몸 자체를 '인간말종' 내지는 '걸레'로 인식하는 한계가 보인다. 사실 이것이 '여성' '성노동자'에게 쏟아지는 이중비난의 알맹이인 셈이다.

나는 거시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성매매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큰 그림에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성노동자를 대하는 그런 시각, 그리고 그들이 받는 고통에 대해 관심있게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원론적인 이야기(성매매반대)만 되풀이하는 것들이, 자주 불편하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은 내가 보수적인 개신교인이고 프리섹스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성노동자의 인권을 얘기할 때 성해방 담론을 반대하는 윤리적 잣대가 그 개개인에게 얹혀지는 현실에 기인한다. (끝)
2013/01/11 01:14 2013/01/11 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