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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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두 교황>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다가 교황 베네딕토16세가 교황직을 내려놓겠다는 내심을 알게되자 프란체스코가 이런 저런 이유로 불가함을 항변하던 도중 베네딕토 교황이 소리친다. "사일런스!" 넷플릭스 자막에는 "조용히 하시오!"라고 번역되었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신이 내게 침묵하고 있소!"가 될 것이다. 더이상 신이 기독교의 수장, 교황인 자신에게 아무런 뜻도 보이지 않는 상태임을 라이벌인 동료에게 고백한 것이다.

엔도 슈사쿠의 책 <침묵>은 한층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17세기 일본에 선교사로 파송된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들은 그곳에서 많은 고초를 겪는다. 일본의 권력자들은 예수의 성화를 밟게 만들고는 밟지 않으면 고문을 가했다. 성도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던 페라이라 신부는 결국 배교자가 되었고, 그를 찾아온 로드리게즈 신부도 내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배교의 길을 걷는다. 성도들이 고통을 받는 중에도 기독교의 신은 침묵했다. 이 소설에서 엔도 슈사쿠는 신의 침묵과 인간의 신앙을 '내재화'라는 관점에서 상징성을 부여했고 신의 침묵이 침묵이 아니듯, 인간의 배교가 배교가 아님을 은연 중에 드러냈다.

2.
유대인들은 성전이 허물어지고 난 후에도 몇 차례의 재건을 꿈꿨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나님의 처소는 회복되지 못했고, 20세기 홀로코스트를 통해 자신들의 신이 침묵하고 있음을 더 정확하게 이해했다. 가톨릭 또한 로마 황제에 의해 종교 자체가 제국의 국교가 된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번창했지만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많은 오명도 함께 얻었다. 당시에도 하나님은 십자군의 편에 서지도 십자군을 벌한 존재로 서지도 않는, '침묵하는 존재'였다.

구약의 하나님은 그 백성들과 함께 했고, 즉각적으로 분노를 표하고 심판을 일삼고 자신의 의중을 항상 그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 전달하는 구체적인 신이었다. 그를 따르는 백성들에게 언제나 응답하였고, 원한다면 자신의 뒷모습마저 보여주셨다.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지고 그 백성은 흩어졌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었고 그가 떠나면서 보혜사 성령님을 약속하였고 그 언약은 성취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도 회심과 함께 그의 영을 받고 신의 뜻을 알고 신의 뜻대로 행할 능력을 얻었다.

3.
하지만, 성령의 시대가 열린 이후로 기독교는 정확한 신의 뜻을 알 수 없는 역사적 흐름 속에 놓여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주후(After Christ) 시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로마권력의 종교가 되는 것도 가능했고, 신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개신교는 병존이 가능했다. 루터와 칼벵이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정작 칼벵의 제네바에서는 괴상한 신권 정치가 행해졌고, 그것이 제압되거나 정죄되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유럽은 신구교간에 수백년에 걸친 기나긴 전쟁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같은 신의 이름으로 다투고 죽어갔지만, 정작 하나님은 침묵했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못해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는 교회의 입장이 강하게 드러났지만, 정작 밀레니엄을 넘기자 선교가 기독교의 중차대한 임무라던 입장은,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거나 명상, 일상사역, 카르페디엠 같은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마치 처음부터 기독교는 (내세지향적이라기 보단) 그런 세속적 입장이었다는 듯 아무런 이슈나 논쟁거리가 없다는 듯 성경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3-1.
한때 은사주의 운동이 교회를 휩쓸기도 했다. '능력대결'이라는 용어도 성행했다. 이는 종종 원시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지만, 문명화된 대도시의 교회에서도 가능한 형태라고 굳게 믿었고 그런 뉴스들이 종종 교계 안팎에 떠돌곤 했다. 로이드존스 목사는 성령세례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내주하는 성령님의 형태와 별개로 '기름부음'의 경험을 구분하여 사용했고 청교도의 후예를 자처하는 계열의 목회자들은 종종 그런 상태를 은유적으로 때론 물리적으로도 표현하기도 했지만, 정작 교회를 한 방향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분석하는 교회의 입장에서도 역설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메타담론으로서의 구속사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교회 자신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평하면서 기독교의 그런 처지를 드러낸 셈이다. 구약처럼 명약관화한 방식으로 신이 그 백성을 이끌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미시사적 의미 속에서 성도들은 각개격파 내지는 몇몇 종파와 조직으로 각자의 경험적 신앙으로 신을 형상화하고 있지만, 그것을 저지하거나 혹은 지지, 비평할 거대담론으로서의 메인스트림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밀레니엄을 20년 넘긴 현재는, 마치 기독교가 진보사회와 결을 같이 하는 것이 세련되고도 '정치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기독교는 예전의 야만성에서 많이 벗어났다. 이제 ‘성전’이나 ‘마녀사냥’은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고 근본주의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으며 '원숭이 재판'이나 '틈새의 신' 논란은 구태의연한 사건이 되었다. 오히려 가톨릭은 프란체스코 신부 체제가 되면서 개신교보다 더 인기있는 종교로 변화하고 있는데 여성의 권리, 낙태, 동성애 등에 대한 입장의 재천명은 어찌보면 신의 침묵 속에서 부단히 옳은 길을 모색하는 교회(인간)의 노력이기도 하다.

4.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다. 이제는 인간이, 성도들이 제각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떠들어대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행한대로 자신의 뜻을 명시적으로 밝히거나 특별한 간섭으로 정죄하지 않는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이 메타담론, 거대담론처럼 하나의 통일된 교회체를 일사분란하게 이끌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비교적 명백하고도 명확한 교회사, 구속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지만. 오랜 역사를 돌아본 지금, 나는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과신했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베네딕토 교황에게만, 일본 선교사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 이후를 사는 교회를 향해 자신의 얼굴을 가리셨다. 왜 그런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지금은 거울을 보듯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가 되면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다. 하지만 '지금'(not yet)은 그렇지 않다. 교회는 하나님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며, 그분의 침묵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속된 말로, 하나님이 지금은 대놓고 참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부활절에, 코로나19라는 전지구적 재난이 임한 이 땅에서, 조용히 내 낡은 신앙을 주장하지 않고 그분의 침묵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2020/04/20 22:16 2020/04/2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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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하긴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음악, 영화평을 주고 받다보면 항상 다투게 되는 친구가 있었다. 대체로 내가 좋아하던 국내 뮤지션이야기를 꺼내면(그는 국내 뮤지션 대부분을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음반은 쓰레기라며 한 두 마디로 내 기호를 제압하곤 했다. 마이클 잭슨 스타일을 모방한다, 킹 크림슨 음악 흉내를 냈다, 창법이 과장됐다는 등등... 촌철이라면 촌철이지만, 섬세하게 들아가본다면 내가 언급한 음악인 중에는 그런 인상 비평이 적절하지 않게 음악 영역이 넓은 이들도 있었고, 더 나아가 문화 컨텐츠에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불호를 혐오스럽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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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80년대 운동권 글쟁이들이 정권을 비판하면 잡혀가던 그 시절에 상당수는 록, 헤비메탈이나 비헐리우드 영화 같은 문화컨텐츠에 고급 비평을 해대기 시작했고, 그런 비평 양식의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내가 좋아한 영화인데 정작 나는 그 영화의 비평을 독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런 분위기가 대중이 소비하던 하위문화인 '바보상자'(TV) 시간떼우기류로 치부하던 '비디오보기', '음악테입 모으기'를 고상한 중년층의 취미로 격상시킨 느낌마저도 있으니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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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부터는 진보 비평이 꽃피던 시절이라 상당히 많은 이들이 진중권식 논쟁의 흐름을 즐겼다. 당연히 나도 그런 논쟁이나 글쓰기에 매료되었고, 한동안은 그 스타일을 체화시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에조차 나는 문화컨텐츠에 그런 냉소적이고 과격한 스타일을 접목시켰을 때 그 자극적인 문체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번 내 비평글을 자족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번 것은 좀 아쉬웠다' 이상의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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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넘어 근 10년간 페미니즘이 담론의 여러 영역을 바꿔놓았다. 그 흐름 속에서 이제 조금씩 확신이 드는 건, '칼보다 강한 펜'의 날카로움이라는 비평 스타일도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성이 만들어낸 무자비함의 한 단면이 아니겠냐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창조물을 부수고 때리고, 짓밟고 난도질하는 과격함이 물리적이지 않으므로 허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남성성의 역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조금씩 과격한 혐오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도 컨텐츠를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매우 풍성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이래저래 배우는 게 많다.
2020/04/20 22:14 2020/04/2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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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이후로 코로나19가 퍼지고 나서, 정말 회사 사람들 외에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일상은 거의 단조로운 루틴을 따르고 일주일의 5일과 주말 2일의 루틴마저 너무도 닮아간다. 올해 하려고 마음먹은 활동(?)은 1사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조차 아무 것도 시작한 것이 없지만, 의외로 나는 무료하지 않게 보내고 있다.
어제는 바바와 걷는 동네 산책길을 나섰다가 봄햇살을 맞은 바바와 산책길 색감을 유심히 보았다. 내게 강아지 산책은 의무이자 하루 30분동안을 허비해야 하는 매일의 루틴이다.
장을 보고 식사를 하고 그릇을 치우고, 잠자고 책읽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회사를 가는, 새롭지 않은 일련의 '인생허비 활동'에서 나는 차분한 상태로 고정되고 있다. 사실, 나를 고정하고 있고 꽤나 즐기고 있기도 하다.
2020/04/20 22:13 2020/04/20 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