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때때로 나는 여성의 평등 혹은 어떤 면에서는 남성보다 더 우월하다는 입장을 가졌음에도(나는 자주 자끄 엘룰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물이 인간이고 그 중에도 여성이라는 점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여성 저자를 추천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리고 솔직히 당시에 몇몇 이름난 여성의 책을 일부러 읽어보았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저자)에 대한 내 생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 같은 게 솔직히 없었다고 할 수 없다.
2.
불과 몇 년 사이에 나는 혼자 있을 때조차 자주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의 여성 저자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물론 그 동안 내 책읽는 스타일의 변화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내적 변화와 별개로 몇 년 사이에 걸출한 여성 글쟁이들이 여러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들어 어떤 (남성) 논객들에게서도 큰 배움을 얻지 못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여성들의 관점과 스타일 모두에서 나는 참회의 눙물을 흘리곤 했다.
3.
여성을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흥미로운 점도 있다. 남자들을 글을 쓸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정량의 허세가 글 전반에 배치가 되어 있다. 지식의 양을 자랑하거나 인맥을 자랑하거나 문화자본을 자랑하거나. 대놓고 자랑하거나 두괄식으로 자랑하거나 '퍼기깔대기'를 들이대거나, 하다못해 '추신'으로 자랑하거나... 어쨌든 허세를 부린다. 그게 어떤 모종의 글쓰는 방법처럼 익숙했고 나도 은연 중에 그런 '허세 운율'을 따르곤 했다.
4.
그런데 정말 재밌게도 내가 좋아하는 다수의 여성 저자들은 그런 허세가 없다. 물론 더러는 자학성 겸손이 몸에 밴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 면에서조차 나는 배우는 부분이 많다. 여전히 허세문법이 나에겐 중요한 부분인데 여성 저자들의 글에 젖어들다보니, 글을 쓸 때마다 마치 은연 중에 'ㅎㅎ 지금 너 무협지 쓰니? 허세 쩐다'라고 말하는 듯한 환청마저 들린다. 흥미롭게도 이런 성찰 아닌 성찰은 남성들의 글쓰기 공간, 장 안에서는 전혀 인지하거나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P.S
오늘도 정희진 선생의 토요 칼럼을 읽으며 행복한 마음에 몇 자 끄적여본다. 허세 없는 담백한 글쓰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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