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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년들이 교회를 방황하는가

** 이 글은 <주간기독교> 30주년 기념호(2000. 11. 12.)에 썼던 것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소진되는 청년들

성가대 대원, 청년부 회장, 청년부 성경공부반 인도자, 찬양인도, 학생부 교사...

1 년동안 교회에서 내가 맡았던 일들이었다. 어느 교회나 그렇겠지만 내가 있던 교회 내에서도 실질적인 일군이 부족했다. 게다가 사실 내게 주어진 일들은 이보다 더 많았고, 그것들을 다 해내지 못하는 나는 항상 교회에 대한 내 헌신이 부족하다는 자책감과 목사님과 교회 사역자분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비단 나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기독 청년들의 상황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이런 청년들이 그들을 위한 어떤 관심과 교육없이 교회 안에서 소진되다가 캠퍼스의 선교단체에서 공급을 받았던 현실이 어쩌면 다행스런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보다 넓은 시야로 본다면 캠퍼스를 실천의 장으로 보지 못하고 단순한 훈련의 장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그 안에서 제자도와 개인 영성 훈련에 초점을 맞추게 된 우리의 현실은 분명 좋게만 해석할 수는 없는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교회에서 공급없는 헌신에 내몰리던 청년들에게 그나마 위로와 안정을 줄 수 있었던 선교단체의 순기능을 간과하는 것 또한 힘든 일일 것이다.

다 행스럽게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교회 내의 청년들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져가고 있으며 이른바 "청년 목회"라는 말들도 심심찮게 들릴 정도로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활성화 되고있는 몇몇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청년들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며 여전히 대부분의 지역교회에서는 동일한 문제들로 청년들이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상황들이 선배 세대의 그것보다는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리라 생각된다.

 

보다 근본적인 교회의 문제들

하지만 적어도 교회에 속한 청년으로서 느끼기엔 대부분의 교회들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청년들이 교회에서 소진되고 있어서 일 자체에 대한 부담으로 느끼는 어려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 째로 교회 일과 교회 일이 아닌 것에 대한 이원론적 사고이다. 때때로 목회를 하시는 분들은 교회의 모든 행사들을 다 참여하는 것과 믿음이 좋은 것을 동일시 하는 경우가 있다. 주일 예배 외에도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기도회 등의 모임에 잘 나오는 것을 신앙 성숙의 잣대로 삼고 교회의 모임들에 충실하지 못한 것을 불신앙으로 단정지어버리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정도 답답함을 느낀다. 결국, 정작 삶에서 드러나야할 영성은 이런 교회 모임들의 연속으로 인해 오히려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 같다.

둘 째로 교회 건물의 성전화이다. 교회 건물을 자꾸 성전과 동일시 하며 대부분의 교회가 성전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무리한 건물 증축을 하고 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목사님이 새해 첫 날 성전 건축을 위해 70억을 책정했다며 성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헌금을 작정하라고 설교시간에 말씀과 함께 성도들을 권면했다. 며칠 후에 부흥회가 있었는데 부흥회에 강사로 오신 분이 3일동안 말씀을 전하시고 가면서 "3일동안 기도하면서 이 교회에 하나님의 성전이 어서빨리 완성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 70억을 책정한 것으로 아는데 오늘 작정 못하신 분은 믿음으로 작정하시기 바란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친척 중에는 이런 교회가 건축을 하면서 은행대출로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는 분도 계신다.

셋 째로는 돈의 문제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면 주보 안에서 많은 봉투들을 발견하게 된다. 십일조, 주일헌금, 건축헌금, 각 절기마다 드리는 감사헌금 봉투는 함께 간 믿은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아직도 많은 교회의 목사님들이 이 헌금자들의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 호명하며 무슨 헌금을 내었는지 이야기하고, "헌금한 이 사람들의 손길 위에 넘치는 복을 부어 주시도록" 축복기도를 한다. 한 번은 교회에서 비싼 물품을 구입하고 성도들에게 특별 헌금에 대한 광고를 했었는데 한 성도가 많은 돈을 헌금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목회자 분들이 그 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집사님 믿음이 많이 성장한 것 같다"는 얘길 하는 것을 들을 때는 참 난감한 느낌을 받았다.

넷째는 지역사회에서 구제와 봉사에 헌신되지 못한 부분이다. 로잔 언약이 천명하고 있듯이 복음전도와 사회 참여는 동일하게 중요하며 초대 교회에서도 소외된 사람들의 구제는 중요한 교회의 일이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선교와 자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는 높은 반면 정작 지역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데에는 많은 부족함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청년들이 목사님에게 우리 교회는 왜 구제 사업과 봉사 사업에 관심이 부족한가에 대해 물었는데 그 때 목사님은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는 곳이다"라고 일언지하에 못박았다.

물 론 그 밖에도 많은 문제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청년들은 교회의 어두운 면들에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그 갈급함이 채워질 때 오히려 더 뜨겁게, 무식하게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순수한 존재들임을 알고 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비교적 많은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위에 나열한 것들은 그런 교회들의 좋지 않았던 면들만 부각된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부정적인 부분들에 있어서 바로 바라보고 문제들을 지적할 때에만이 더 나은 현실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청년들의 문제

얼마 전 선교단체 수련회의 주강사가 한 강해설교 시간에 했던 말에 주목하게 되었다.
"요즘 청년들이 어떤지 아는가. 선교단체에서 열심히 배우고 비판적 시각을 길러서는 교회에 가서 우리교회는 말씀이 안좋다, 교회에서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며 교회를 떠돌다가 다들 말씀좋은 목사님이 있는 대형교회의 뒷자리에 앉아 주일 예배만 드리는 학사들이 대부분이다."

교 회에 대해 비판하려면 청년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교회는 없고 동일하게 청년들이 채워가야할 부분이 있는데 많은 청년들이 비판만이 능사인 것처럼 다니던 교회를 비판하고 심지어는 떠나서 더 크고 말씀이 좋다고 소문이 나있고, 청년들이 즐비해서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교회들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들을 본다.

청년들의 교회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들과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들은 청년들이 그 문제들에 대해 비아냥 거리는 것이 아닌, 진정 교회의 참된 모습에 대해 아파하고 고민하며 동일하게 행동으로, 작은 실천으로 교회에서 청년의 역할을 감당해 나갈 때에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더 큰 빛을 발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교회를 바꿔 가며 언젠가는 우리가 기성 세대로서 교회에 자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교회의 기성 세대가 될 때에는 더 나은 교회를 청년들에게 물려주어야하지 않을까.**

 

김용주* 한양대 기계과에 재학중/ 예수가족교회 출석
2000/01/01 00:44 2000/01/01 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