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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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y가 '재희'가 되길 꿈꾸며...  (1999.5. 5.)

/ 김용주
 

Jay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야겠다. 원래 나의 필명은 "My Jay"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90년대 중반 학번으로 나의 필명을 모르는 한양IVFer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이름은 다소 어거지(?)의 조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 나의 필명은 "male Y.J."였다. 같은 선교단체의 지부 내에 영주, 연정이 누나가 "Y.J."라고 많이 썼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성별을 표기한 것이다. 겉보기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첫 글자 만을 따서 "M.Y.J"로 만들고 보니 "My J."라고 쓰는게 더 그럴 듯해 보였다. 게다가 "my"라는 소유 대명사 뒤에 있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 같은 발음인 "jay"라고 쓰게 되었고, 그렇게 쓰기 시작한 "My Jay"라는 필명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쓰고 있다. 흔히 외국인들이 부르기 편하라고 "Jay"를 이름처럼 쓰곤 하기도 한다.

jay란 말은 영어로, 흔히 속된 말로 "수다장이" 혹은 "멍청이"정도라고 한다. 필명을 만들면서 내심 속으로 나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가 조소내지는 방관적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jay만큼 나와 잘 어울리는 말도 없는 듯 했다. 나는 내 스스로 상당히 낙천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년기의 중간중간에 있었던 많은 어려움들로 인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사회의 어두운 부분과, 생존이라는 이름아래 겪어야 하는 많은 고통들을 알게 되고 난 후로는 삶의 그런 어두운 부분이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했고 그렇게 살기로 다짐했었다. 흔히 어린 왕자나 바보이반으로 대표되는 순수함을 나 자신도 간직하고 싶어서 였을까...아무튼 그런 생각들로 마음을 정화(?)하며 살아 보려고 했던 시간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과정 속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1년동안 앞을 보지 못하기도 하고, 가정 내의 불화, 직장에서 쫓겨난 아버지, 어머니의 쓰러짐, 학교 내의 비리들...이런 일들 속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나를 더욱 현실과 거리가 생기도록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학에 발 붙이면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낙천적 성격을 유지했던 내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 나의 여자 친구도 그런 모습에 끌렸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밀려오는 현실의 문제 속에 나는 더이상 어린 왕자 흉내를 낼 수 없었고, 난 한없이 나의 정해진 것 하나없는 미래에 두려워해야만 했다.

휴학 후, 나는 나름대로 여러 경험을 해 보기 위해 공장에 들어가서 3개월동안 일을 해보기도 했고, 거기에서 나의 부족함으로 빚어진 다툼때문에 공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하지만, 몇가지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노동판에서 일하는 이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과 내 자신의 생각이 너무 협소했다는 것, 그리고 사회라는 이름의 구조를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그때 즈음해서 건강이 심하게 나빠졌고 군 문제로 훈련소 들어가기 한 달 전에는 내내 침대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내 예상보다 더 길어지게 된 휴학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참 좋은 사람이었지만 더이상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되었다.
사실, 힘든 시간이었다. 공장에서 있었던 일의 뒷 문제나 보충역이나마 군 복무가 시작되었는데 계속되는 건강의 악화, 내면의 흔들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서도 낙천적으로 보이기 위해 웃음이라는 가면을 들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곤 했다.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만나려면 꽤나 많은 수치의 약을 복용해야 했던 나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으리라. 결국, 그렇게 내 어리석었던 가치관은 허물어졌다. 광대처럼 사람들 앞에 당당히 웃음짓던, 그 거짓된 여유를 더이상 부릴 자신이 없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바보 이반이란 있을 수 없다는 쓰디쓴 교훈만을 배웠다.


휴학한 지, 이제 3년째에 접어들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그 무섭다는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한 지도 꽤나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다. 많은 사람도 만나보고 그들의 얘기를 통해 많은 도움도 받았다.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조금은 다른 것인 것 같다. 사실, 알고 보면 나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현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 반성도 없고 삶에 대해 바르게 대처하고자 하는 열정도 없이, 그저 그것들과는 벽을 쌓고 어린 왕자처럼 예쁘게, 혹은 몸 하나 안 더럽히고 순수함을 유지하려 했던 백면서생의 모습의 전형인 나 자신을 바라 보았다. 리스트의 손처럼 가냘픔이 사라지고 군데군데 굳은 살이 붙으면서, 삶과 직면하고 현실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나는 내 어리석은 과오들이 나를 두렵게 한 근본 원인이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최근에는 "Jay"라는 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법을 골몰하던 중, "재희(再喜)"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말은 "rejoice"와 같다.
"다시 기뻐함"
이제 나에게 붙여야 할 말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에서 뼈가 굳어지고 생각이 넓어지는 요즈음에 이제는 현실과 벽을 쌓지 않고, 그 두려움을 바라 보면서 내심 웃을 수 있는 준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쁜 건강 가운데에서도, 힘든 일상 속에서도 이제는 자족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내년에는 다시 웃는 내 모습을 캠퍼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의미는 3년 전과는 사뭇 틀리겠지만...
1999/05/05 18:45 1999/05/05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