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초들이 왜 안 밉지? 환장할 노릇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김용주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봤다. 영화는 재밌었다. 이선균은 원래 좋아하는 배우고 정은채라는 여배우는 원래 모르던 배우였다. 그런데 영화 속 그녀의 얼굴에서 시종일관 빛이 났다. 누구지? 정유미 이후로 기대되는 배우급이었다고나 할까. 영화는 삼일절 조조로 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찜찜했다. 왜였을까.
한때 나는 홍상수를 싫어했다. 7년쯤 전에 쓴 글을 보니 나는 홍상수가 이래서 싫었단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인간사(人間事)를 미시적으로 파헤치는 그의 시각은, 영화를 보는 내내 현미경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본 후 그것을 여과 없이 스크린에 담아낸 듯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신선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관이 싫다. 아니, 그의 세계관이 싫다. 그에겐 모든 것이 형이하학적이다. 영화의 주제의식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정도랄까. 영화 속 인물이 교수이건 학생이건, 어떤 사회에 어떤 시대에 몸담고 있건, 결국 사람은 직장을 얻어 먹고 사는 문제, 남녀관계에서의 육체적 사랑, 질투심 따위만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귀결된다.
이는, 마치 모든 생물들과 온 세상의 물질들이 결국에는 원자와 분자들의 운동으로 귀결된다는 환원주의적 시각에 다름 아니다. 물론, 인간은 태생적으로 원초적인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먹고 사는 문제, 남녀 간의 사랑, 질투심, 돈, 집, 직장.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것들은 실제로 우리 삶의 큰 영역을 차지하는 부분이며, 우리가 의식적으로는 하찮게 여기지만 무의식 속에는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임을 홍상수의 현미경 같은 카메라는 꼬집어 드러낸다. 사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본질적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과 함께."
지금은 그때처럼 홍상수의 작품에 비판적이지는 않다. 그동안 그의 영화를 보는 내 시각이 많이 달라졌고, 또 그의 최근 몇 년간 작품들도 완성도나 스타일 자체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 즈음 문득 이 영화가 찜찜한 이유를 알았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인 '정은채'라는 배우를 검색하다가 그녀가 영화에서 설정처럼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화에서 그녀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 다른 학생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데 또래집단에서는 불편한 캐릭터인 그녀가 중년 남성들의 눈에는 정말 통통 튀고 매력적이다.
젊은 여대생인데다가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다. 게다가 이국적으로 생겼는데 외국생활을 오래해서 문화적으로도 외국 느낌이 난다. 게다가 또래 집단과 거리감도 있다. 친구들에겐 '악마'같은(해원은 자기를 악마라고 말한다) 존재지만 지도 교수, 주변 아저씨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그런 여대생과 남자교수의 불륜이라니.
두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흥미를 자극하고 교수들의 위선과 학생들의 시선, 행인처럼 지나가는 인물들을 통해 반복되는 행동들이 영화를 맛깔나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이 영화의 원초적 몸뚱아리는 중년 남성들의 판타지, 여신같은 여대생 '해원'이다.
사실 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정작 중년 마초들은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여성들에게도 호소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나는 그 이유를 그가 '패를 보여주는' 영화를 찍기 때문이라고 본다. 홍상수의 내러티브는 마초적인데 그 내러티브의 디테일이 정작 마초들을 까발리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속 남자들은 다 속물스럽다. 그런데도 영화 속 남자들이 그리 밉지가 않다. 환장할 노릇이다.
사실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는 내 감정이 분열되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큰 틀에서 그의 영화는 페미니즘적 입장을 취할 때 반대할 만한 요소들이 많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은 항상 남자가 같이 자고 싶어하는 대상으로서 '성적인 요소'만을 함의한다. 사실 그는 그것을 까발리고 싶어한다. 영화 속 남자들은 뭐 대단한 얘기들을 하고 예술을 논하는 것 같지만 개나 소나 할 것 없이 어리고 예쁜 여자들의 꽁무니나 쫓아다닌다. 사실 우리가 그러지 않냐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굵은 선에서 보면 그의 영화가 싫다. 그런데 자꾸 영화 속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진다. 그 다음 상황에 빠져든다. 불륜을 행하는 교수는 자기 제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가정을 버리지도 못하는 한심한 인생이다. 영화에서 7년째 불륜관계를 갖는 또다른 커플(유준상/예지원)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한다. 남자는 죽어마땅한 유부남이 아니라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불쌍한 아저씨다. 너무 적나라한 의도들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드러나서, 보는 나도 막 '그들'이 걱정스럽다.
여주인공 해원은 이 관계가 지긋지긋해서 끝내려고 결단하지만 또다시 남자가 우는 모습을 보며 힘들어하다가 영화는 끝난다. 매번 그렇듯 홍상수의 영화는 기승전결도 없고 클라이맥스도 없다. 더 미치겠는 건, 뭐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없는데 영화는 재밌게 보게 되더라는 거다. 도대체 이건 뭐란 말인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 내 '동정(?)'을 이끌어낼 수 있단 말이냐. 아저씨들의 판타지 같은 이런 영화를 보며 즐거워해도 되는 건가. 뭐 이런 생각이 계속 든다. 하여간, 참 안쓰러운 매력이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