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1.
살면서 상당기간을 비판글을 썼다.
자음과 모음들을 모아 춤을 추게 만들었다.
실명으로, 텍스트를 쪼개가며 글쓰는 것,
쓰여진 글을 풀어서 되돌려 주는 것.
굴욕적인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
더 강한 답글을 만나면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
2.
글에 레벨을 따지지면 누군가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관'을 세우는 것보다) 쉬운 경우가 잦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바둑이나 장기를 옆에서 훈수 두듯이 당사자에게
안 보이는 것들이 옆에선 매직아이처럼 도드라진다.
.
3.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더이상 누군가에게 비판글을 쓰지 않게 됐다.
전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한주에 한두명은 거론했던 과거에 비해
나는 참 글에 있어서는 평화주의자가 된 거 같다.
솔직히 요즘은,
싫어하는 누군가를 비판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누군가를 옹호하는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
4. 
사실 그 작업은 비판글을 쓰는 것처럼 쉽지 않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오해의 소지도 있고, 일정부분 정치적인 타협도 필요하다.
나아가 정작 당사자가 원치 않을 때도 있다.
내가 누군가를 부정하는 일은 비교적 쉽게 
주변에서 받아들여지지만(적어도 '다름'을 인정받지만)
내가 누군가를 긍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의심의 눈초리와 부정적인 반응,
박쥐, 회색인간, 양다리 등등
냉정하게 말해 나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곤 한다.
.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를 긍정하는 일,
좋아하는 누군가를 옹호하는 것을 내 지향점으로 삼는다.
그것은, 내게 어떤 거룩한 소명이라거나 
큰 그림에서의 의무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여러가지 이유로 비판글을 쓰지 않게 되었기에
불구자의, 대안적인 몸부림에 가깝다. 
마치 조폭이나 강력계 형사가 칼이나 피를 보면
몸이 굳어버려 더이상 '영업'을 못하게 된 것과 유사하다.
.
6.
물론, 
여전히 비판적인 문구들이 유희처럼 머리속을 맴돌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유희를 넘어선 현기증이 나를 누른다.
글쓰기가 내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 나는 살기 위해
평화주의자'연' 해야 한다. 그렇게 걸어가야 한다.
.
7.
김성근 감독.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내게도 그는 참 높아 보였다.
각설하고 내가 꽂힌 그의 고매한 리더십은 바로,
'내 선수 중에 버릴 사람은 한명도 없다. 모두 쓸모가 있다.'
는 인식에서 오는 것이었다. 인간은 모두 쓸모가 있다.
사실 '쓸모'라는 것은 인격체에 부여된 최소한의 효용성이다.
내가 그에게서 취한 화두는,
나에게만 보이는(그런 류가 존재한다면)
그 효용성이라는 것을 힘.써. 드러내자는 거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내 글쓰기의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
...
요즘 그런 생각하고 산다. 
뭐... 그런 생각하느라 글은 별로 안 쓰고 산다.
2015/01/28 20:43 2015/01/28 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