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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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3학년? 5학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아이큐가 118이라는 소문이 반에 돌았다. 당시에 동네 학군이 높았던지 평균 아이큐가 128 정도였고 나는 그보다 10이 낮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내가 너무 창피해해서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 선생님에게 물어보셨는데 선생님은 부인하시면서도 끝내 아이큐를 알려주지는 않으셨다. 때문에 선생님은 원칙이라고 했지만 어머니와 나는 더욱더 내 아이큐가 118이라는 의구심을 키워갔다.

그땐 아이큐가 무슨 내 CPU사양이라도 되는 듯 그 숫자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점점 천재, 영재의 성공스토리보다 99%노력을 강조했던 에디슨이나 둔재들의 성공 사례들에 희망을 얹고 그들과 나를 동일시하곤 했다.

문제는 머리가 나쁘면 열심히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시험 때마다 나는 내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였다. 죄책감과 더불어 난 왜 날때부터 똑똑하지 못한가...하는 원망감. 악순환이었다.

중3, 고1 때인가. 학교에서 아이큐 검사를 다시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점수를 올릴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다. 문제는 악마도 만날 수 없고, 아이큐 검사의 해답지도 구할 수 없다는 것.ㅠㅠ 당시에 내가 한 최선의 치팅은 섹션별로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다른 섹션을 다 풀고 시간이 남으면 되돌아가서 못푼 섹션의 문제를 더 풀었던 정도?

그리고 다시 점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고 어머니는 내가 아이큐가 낮다고 그간 자학해온 아픈 사연을 설명하셨다. 선생님은 이례적으로 내 아이큐를 알려주었다. 148. 학교마치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어머니가 외친 숫자였다. 어머니의 흥분에는 넌 바보가 아니었어...라는 복음과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난 그때 알았다. 아이큐는 날 규정하지 않는다는 걸. 솔직히 유년기와 사춘기 시기에 작은 단점마저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던 바로 그 시기에 아이들이 내 지능을 갖고 놀린 부분은 5-6년 동안 내게 심한 트라우마가 되어왔다. 고정된 118의 지능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나는 자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까먹고도 그것으로 어머니에게 혼남과는 별개로 나는 내 지능에 대해 자책과 원망감에 휩싸이곤 했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같았던 그 시절.. 나를 참 많이도 괴롭혔다. 난 반 상위권이었지만 전교 상위권이 아닌 이유를 118에서 찾았고 그것은 성적을 더 올리지 못하는 장애물이 됨과 동시에 지능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도덕적 명령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도 못함을 의미했다.

148. 기쁘기 보단, 왠지 허무 개그같은 느낌의 숫자. 118에 기인한 나의 수많은 낮과 밤의 고민과 의문, 학교와 가정, 세세한 기억하나에서조차 그 원인을 찾던 118은, 알고보니 내 숫자가 아니었다? 이건 뭔 어른들의 개장난이야...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대체로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숫자나 딱지를 붙이는 걸 싫어한다. 지인들의 출신 대학도 잘 모른다. 그것들이 그 생동감 있는 독특한 한 개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뼈속까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어떤 숫자나 딱지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안다. 누구 말마따나 나도 다 (당)해봐서 알겠다. 고로, 안 해봐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덧글.
이상은 아이큐 퍼기 깔대기였다.^^

2012/07/20 21:46 2012/07/20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