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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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글을 디폴트 B급으로 친다. 요즘은 글을 자주 쓰지도 않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줄곳 내 글에 대한 스스로의 아쉬움이 이어졌다. 그것은 이른바 학계, 교계나 주류의 논객들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한다는 자격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한때 나는 지식으로 철갑을 두른(칠갑 아니고) 논객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난 왜 신학이나 공부를 더 하지 않고 돈벌이 직딩이 되었나...하는 아쉬움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헌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길이 내게 주어진 것도 아니요 실로 내가 가고싶지도 않은 길이란 생각이 점점 커지면서 사실 교계든 뭐든 논객의 위치에서 이탈된 삶이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글 한편을 쓰고서 퇴고를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이 내 스스로의 글에 대한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창피하기만 한 이십대에 쓴 내 글들. 그래도 그 글들에 대한 특유의 자존심은 5-6번의 퇴고 작업에 기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넘긴 글은 솔직히 다시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겨웠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좀 낫지만 성하가 태어난 직후에 나에겐 글쓸 짬이 없었다. 성하가 좀 자라고 나서는 직장생활이 더 바빠졌다. 뭔가 쓰고 싶은 글이 생겨도 이제는 초안을 마치기조차 쉽지 않다. 때론 떠오른 생각들을 글로 옮겨두지 못해서 아쉽게 잊어버린 것들도 많다.(아.. 그 대단했던 생각들이여.ㅋ) 결국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가뭄에 콩나듯 청탁이 들어왔고 나는 그 글을 쓰면서도 허덕였다. 퇴고는 무슨, 퇴근하고 초안을 쓰기도 버거웠고 그렇게 끝나기가 무섭게 마감 직전의 내 원고는 전자메일을 통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초안'이 종이에 찍혀서 내 손에 들어왔다. 처음엔 마음이 많이 상했다. 내 기준에도 못 미치는 글, 조금은 더 매끄러울 수 있는 표현들. 이제야 생각난 더 좋은 예화... 그래도 그렇게라도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게 어디냐 라는 생각을 위안삼고 넘어갔다. 근데 그렇게 생각을 하자 몇 번의 글을 더 썼고 그 이후로는 청탁이 아니더라도 글을 써서 내 손으로 매체에 보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마음에는 그 글들이 B급이라는 평가와 함께.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시대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물론 내 생각도 변한다. 단순히 변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어떤 틀이 생기고 그 틀이 강물처럼 이리저리 길을 찾아 바다에 닿으려는 욕망 같다는 느낌. 결국 나는 글쓰기의 대가가 될 마음이 아닌데 내 생각이 조금 더 매끄럽고 조금 덜 매끄러우면 어떤가. 지금 나는 내 실존적인 이슈들을 써내려가고 싶을 뿐인데. 결국은 누군가와 공감하고 그 공감을 통해 연대하고 함께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물론 내 글이 뛰어나면 더 좋겠지만 내 목표가 어떤 류의 '팬덤'이나 학계에 오래도록 기억될 fine idea가 아닌 다음에야 글이 더 매끄럽기를 바랄 이유가 뭔가 하는 생각 말이다. 결국 무식이 용감이라고 나는 그런 B급 글쓰기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보기에도 조금은 못생긴 내 글들을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실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 미안하다, 얘들아.

2012/07/24 18:40 2012/07/24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