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 언약과 사회참여에 대한 짧은 글
/ 김용주
기독교인의 사회참여 문제는 더 이상 우리의 뜨거운 논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이미 기독인의 사회참여의 형태가 정착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참여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20년이 넘은 로잔 언약을 다시 끄집어내어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꼈다.
먼저는 로잔 운동에 대해 소개한 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하겠다. (로잔 운동에 대한 내용은 조종남 박사님의 "로잔의 세계 복음화 운동의 역사적 정신"을 참고했다)
로잔 세계 복음화운동(Lausanne Movement for Evangelization)이란 1974년 7월에 스위스의 로잔에서 열렸던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대회는 7월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간 열렸고 150국가에서 2700여명의 복음주의 교회 지도자들이 모였었다.
이 로잔대회가 성취한 공헌 중 중요한 것은, 세계 복음화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정리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로잔 언약(Lausanne Covenent)"이다.
로잔 언약에서 두드러진 부분이 바로 전도와 사회참여에 대한 올바른 관계의 정립인 것 같다. (조종남 박사는 이를 두고, "원색적 복음주의가 귀한 유산으로 간직해오던 사회적 책임이 로잔 언약에 이르러 되찾아졌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위대한 공헌"이라고 언급했다) 로잔 언약은 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전도와 사회, 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했다. 또 로잔 언약은 사랑에서 나온 예수님의 전도(word)와 봉사(deed)를 이분화하거나 고립시킬 수 없다고 이해했다.
이러한 사회참여(social responsibility)에는 봉사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구제, 박애사업이 있는가 하면, 정치, 경제적 활동, 사회 구조변경을 추구하거나 정의 구현을 위한 사회, 정치활동이 있다.
물론, 사회참여를 이야기할 때 가져야 할 긴장점이 있다.
먼저는 "전도의 우위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는 인간의 영적 고통과 영원한 운명이 이 사회의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더 큰 것임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전도를 통한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없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로잔 운동은 필연적으로 제자도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두 번째로, 교회는 "어떤 특정한 문화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체계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나타나는 문제점은 복음 자체보다 제휴된 체계를 옹호하고 고수하는 일을 더 중요시하게 되며, 또 교회가 정당이나 정치적 노선과 동일시되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짧게나마 로잔 운동에서 제기된 사회참여의 문제를 정리해 보았다.
우리는 신앙인의 사회참여가 복음의 정수를 무시하고 결국은 무미건조한 운동으로 끝맺은 아픈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은 또 다른 극단-사회참여에 배타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과거를 반추하여 복음의 정수를 회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실상, 사회참여에 충실하지 못한 우리의 복음 선포와 제자도는 자체로서 반쪽의 복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학 4년간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자신의 "내적 치유"나 성경 연구와 같은 개인적인 신앙훈련을 꾸준히 하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써 힘들게 로잔 운동을 통해 회복한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사이의 균형을 후대인 우리가 무관심하게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영혼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더불어, 사회의 구조적인 악과 빈곤, 매스 미디어의 그릇된 언론 플레이, 장애인의 복지문제, 정치와 노동 조건의 개선과 같은 문제들에도 로고스이신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져야 할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며, 그릇된 편견일까.
이 글을 읽는 모든 IVFer와 청년 기독 학생들에게 도전한다. 사회참여는 결코 간과될 수 없다. 이 부분을 지나치려거든 복음을 포기하자!
(1998. 11.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