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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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Short Notes)

2002. 9. 30. ~ 10. 23.


Minority Mania

초등학교 때 다수결에 대해 처음 듣고는 참 좋은 방법이란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 사춘기가 지나고는 아웃사이더가 참 멋있어 보였다.
대학을 다니던 무렵에는 소수(minority)의 항변에 불편한 마음이 조금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Minority Report>를 보았다. 3명의 예지자 중에 1명이
다른 미래를 보면 자동적으로 그 이미지는 삭제된다.

<Minority Support>..소수자의 항변을 돕기 위한 장치라고...그것이 내가
메울 자리라고 생각했다.

<Minority Mania>..
Mania는 골수 팬이어야 한다. 무슨 운동이든 대중화, 민중의 참여가 중요하다
는 생각이 변치 않음에도 난 Minority Mania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결국, 골수 팬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에 빠져들고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들여야 한다. 그러한 물리적, 정신적 노력이 특정한 분야의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Minority Mania는 결코 Majority로 묽어질 수 없다.
이미 백그라운드에 깔린 깊게 축적된 공감대를 주춧돌로 삼아 계속 올라가는 첨탑과
같기 때문이다.

난...
Minority Mania로 Minority Support를 하며 Minority의 Major화를 위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아웃사이더를 인사이드로 끌어들이며 다수결을 참고하련다....
 


postscript) 난...조규찬이 좋다.



죽음

추석 연휴 이후에 내 주변에서 3명의 사람이 죽었다.
다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었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힘든 세상 이제 떠난다고 평안히 잠드소서...라고 해야 하는가.

아님 물리적으로 기독교라는 안경을 쓰고서,
먼저 그 사람이 불신자이냐 신자이냐를 물어보고...
불신자이면 안타까워하고
신자이면 하늘로 올라간 것을 기뻐해야 하는가.

죽음은,
일그러진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단절"이다.
이제껏 주변에 맺어져 있던 모든 관계와의 단절.
남은 자는 그리움에 사무칠 뿐이다.

 


postscript) 아픔은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속일 필요 없다.

 


나다움...그 독특함에 관해.

가을...
어느 정도 서늘한 날씨에 청명한 하늘...
그리고 적절한 습도가 내 주위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 요즘..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기분이 날 들뜨게 만든다.
한 여름의 더위 속에 흐릿흐릿하던,
세상 속에 파묻힐 것 같은 현기증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가
내 머리 결을 스쳐가는 서늘한 바람 만큼이나 뚜렷함을 경험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다움...나의 독특함...
나만이 구사할 수 있는 표현들과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들,
나만이 생각할 수 있는 그 독특한 사유방식들이 나를 설레게 만든다.

그리고 그 독특함으로 세상에 발길을 옮겨본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손가락의 지문 모양을 그 분의 예술적 감각으로 스케치해 가셨던 것처럼,
이제 그 지문의 하나하나를 소유한
나를 포함한 그 독특한 인격적 창조물들은

적절한 때가 오면,
태고부터 계획된 그 고유한 향기를 발산한다..


postscript) 이젠 더 이상 몸값을 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다녔다.

 



비욘드 퍼디션(beyond perdition)

그렇지...
모두들 퍼디션에 모여 있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모두 이곳 너머로 보내놓고...
이젠 모두들 음악에 몸을 기댄 채, 안식의 술잔을 들이키고 있다.
난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심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번 한 번만...'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함박 웃음 지으며 그들에게 춤을 권한다.

가끔은 내 심장의 박동과 발의 스탭이 엇갈려
정신이 어지럽기도 하지만 난 그들과 미친 듯이 춤을 춘다.

사람들은...
흥겨운 음악과 춤에 정신을 빼앗기며 즐거워한다.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사람들과 함께...


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사람들과 함께...
 

제발...나는 피리부는 소년처럼...
춤추는 사람들과 함께, 비욘드 퍼디션!


postscript)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괜히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 것.


 


깨진 유리병..


아무리 아름다운 유리병도.
아무리 방 한 가운데에 두고 닦고 또 닦고.
그 안에 하루하루 담아둔 물건들이 가치가 있다 해도.

깨진 유리병은
그냥 유리 조각일 뿐이다.

다시 주워 담아도.
조각들을 아무리 조심스레 가져다 붙여도.

붙여진 유리조각들을 두고 유리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깨진 유리병은 그냥 유리 조각들일 뿐이다...


postscript) 헤어지면서 그 사람에게 했던 말...


 


바다

처음 바다에 갔었다. 가족과 함께.

바다에 대한 내 첫 느낌은 두려움과 설레임이었다.

두려운 건,
바다 바람과
가끔 내 키를 한참 넘어 보이는 파도였고,

설레임은,
바다의 한없이 푸르른 색감,
모래의 까칠까칠함,
그리고, 물 속에서 뛰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처음 바다에 들어갔을 때의 차가움.
파란색이었는데 손으로 담으면 투명해지는..
소금맛이 나는 물..

지금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키의 내가
마음껏 흥분에 도취되어 있을 때,
아버지보다 더 큰 키의 파도가 내 앞을 덮는 것을 알았다.

어느 순간엔가 난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신세가 되었다.
파도가 날 덮었다가 고스란히 뱉어낸 것이었다.

난 물침대 위에 누운 사람처럼..
바다로 떠내려 가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말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게.. 한참을 지나서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지 않게 되었고,

난 그제서야 소리쳤다..

'엄마...'

'아빠...'

난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난 간절했지만 소리가 나질 않았다.

다시 돌아가려면 난 바다 속으로 빠져야 하는데,
내 발이 땅에 닿을 수 있을지, 혹시 영원히 발이 닿지 않아
바다 깊숙히 빠져들어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난 소리칠 수도 없지만
몸을 움직여 균형을 잃고서 바다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어가
영원히 숨쉴 수 없게 되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난 두려웠다.
벗어날 수 없다....


그 때 누군가가 떠있던 날 물 속으로 빠뜨렸다.
순간 난 놀랐지만, 견고하고 강한 팔이 날 붙잡고는 천천히
끌어올려 주었다. 난 지금도 그 감각을 잊을 수 없다.

그건 아버지의 팔이었다..


postscript) 바다는 세상, 나는 당신, 아버지는 나...



death of modernist..

<이성과 합리성..>

이제껏 나의 삶은,
설명되어질 수 있고, 통계적인 수치가 말해주는 것에
기반을 두어왔다.


<느낌과 감정..>

난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쓴 사람처럼
나에겐 모든 게 항상 희미하게만 보였고,
내가 본 그 형상을 새로 정의하고 규격화 하면서
그렇게 정리된 합리적인 감정의 틀에
갇힌 나는 또다시 가뭄에 갈라진 땅처럼.
갈증과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Neo in the "Matrix"..>

neo는 매트릭스 안에서 뭔가 희미한 감정을 발견한다.
곧 그는 매트릭스를 벗어나고 그는 매트릭스를 이해하게 되며..
결국에 그는 그것을 "느끼게" 된다.


<"line of despare"..>

쉐퍼는 키에르케고르가 합리성에서 비약했다고 비판했다.
그것이 <이성에서의 도피>에서 말한 "절망의 선".
합리성의 한계라고 말하는 게 옳았다.


<이성과 감정..>

이제껏 나는 "느낀다"는 표현을 써 본 일이 없다.
그렇게 분명하게 내 영혼에 메시지를 던졌던 일이 내겐 없었기 때문에.
난 항상 exact solution을 가진 게 아니라,
repeated fitting과 통계적 근사치만을 가진 모더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분명하게 "느낀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에게 둘러싼 모든 것들이 너무도 분명하게 다가온다.


<death of modernist..>

이제 더 이상 내 삶은
내가 인지하고 생각하고, 이해하여 구축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다.
난 여기가 어디인지 알 것 같다.
이젠 real life..

 

postscript)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바다2: Allegory

낚시를 갔다가 바다에 빠졌다.
방파제 위에서 미끄러졌는데 생각보다 바다가 깊었다.
난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이젠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나이였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적어도 바닥은 내 키의 5배는 되는 것 같았다.
물 속으로 비치는 수많은 방파제 블럭들이 날 질리게 만들었다.

눈 앞이 아득해졌다...

순간..
난 내가 어린 나이지만,
나에겐 살아야하는 이유들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잠시였지만, 하나님은 내 가진 것을 쓰시리라 생각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한 번 물 밑으로 내려갔다가
온 힘을 다해 바다물을 박차고 솟구쳤다.

떠오르는 몸을 방파제 벽에 붙이고
손을 쉴 새없이 움직이며
위로...위로 기어 올랐다.


Home, Sweet Home...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난 달려갔다..
 


postscript) 그래, 이제 마지막 날개 짓인 걸..

 

 


Rainbow-the sign of the covenant

무지개..

그것은 하나님께서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멸하시거나 벌하시지 않겠다는 언약의 표징이다!

 

자신이 없을 때마다 무지개를 보며

난..

동일한 상처로

고통 받지 않을 수 있음을 확증한다..


 

 


병아리

노란 병아리,

조그마한 발로,

조심 조심 뛰어가다,

담 벼락의 끝에 다다르자 소리치다.

飛躍(비약)..

飛躍(비약)..


postscript) 병아리는 다 자란 후에도 날 수 없다. 그게 병아리의 운명이다..

2002/10/30 19:06 2002/10/3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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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동안 너무 피곤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주는 하루에 4시간도 채 못자는 날들이 많았던 지라 주말이 다가오자 부족했던 잠을 잘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습니다.

"용주야, 너 토요일에 뭐하냐?"
"글쎄, 뭐 특별한 일은 없는데...좀 피곤하긴 해. 근데 왜?"
"아니, 별 일 없으면 토요일에 애들이랑 농구나 하고 밥이나 같이 먹게."
"그러지 뭐. 요즘 같이 놀아본 지도 오래되었는데..."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워낙에 좋은 녀석들이라 쉬고 싶은 마음은 접어둔 채 그렇게 말해 버렸습니다. 사실 녀석들에게 매번 도움도 많이 받고 항상 서로를 걱정해 주는 이 친구들을 만난 것이 그 동안에도 너무 감사했거든요.(^^)
키에 걸맞지 않게 농구에 약한 나이지만, 그래도 잘 해야 좋아하는 건 아니란 생각에.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피곤하게 또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토요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일어나 보니, 시간은 30여분 늦어졌고, 도착 시간도 그 정도로 늦어질 것 같았습니다.
허둥지둥 옷을 챙겨입고 버스를 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용주야, 어디냐?"
"이제 출발했는데 한 30분 정도 늦을 거 같아."
"그래? 그럼 오면 한마당 쪽으로 와~"
"알았어."

그럭저럭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도착할 즈음에 문자 메세지가 왔습니다.
'나  집에 간다"...허둥지둥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이제 학교에 가는 길인데, 너 왜 집에 가니?"
"야이 자식아! 지금이 몇 신데 이제 오는 거야?"
"내가 한 30분 늦는다고 했잖아?"
"언제? 10분정도 늦을 거라더니...하여튼 나 집에 다 왔어. 학교에 애들 아직 있으니까 거기나 가봐."
"야,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미안한 줄 알면 다음에나 잘해!"

갑자기 크게 잘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은 학교를 올라가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지친 상태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당에 가니 친구들 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호가 너 기다리다가 먼저 갔어."
"이제오면 어떻게 해!"
"미안해..."

그렇게 고개를 숙이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습니다.

"하하하. 내가 집에 간 줄 알았지?"
"휴, 야 너 뭐야. 내가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알아? ...니들 짰구나?"
"너 오늘이 만우절인거 모르냐?"

우린 다 같이 웃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늦긴 늦은 관계로 운동은 못하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한 녀석이 케잌을 꺼내들었지요. 다들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생일 축하한다. 용주야!"

하하. 고마운 녀석들...가슴 한 구석이 뜨겁게 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이 생일 선물까지 준비했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 셋을 세면 눈을 떠도 좋다고 해서 셋에 눈을 떴습니다.

"하나, 둘, 셋!"
"윽, 이게 뭐냐?"
"하하하! 뭐 좋은 거 줄 줄로 알았냐?"

  순진한 나는 피할 생각도 못한 채로 케잌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이 준비한 친구들의 흔적이 역력한 자리였습니다.

"이래놓고 밥은 나더러 사라는 얘기지?"
"무슨 소리야? 생일 날 밥 한끼로 그냥 넘어가려는 거야?"
"그럼, 밥까지 니네들이 낼래?"

그렇게 농담을 섞어가며 축하도 받고 케잌도 먹고 서로의 사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서 집에 가려는데 또 다시 이 녀석들이 나를 잡았습니다. 용산에 가자는 것입니다.
일전에 컴퓨터의 ram 용량이 적어서 투덜댄 적이 있었는데 글쎄 이 녀석들이 그걸 용케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용산에 같이 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다짜고짜 나를 끌고 용산에 가서 지네들이 가게마다 들어가서 가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냥 사자고 하는데도 마치 자기 일인 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더 싼 곳을 없나 알아보더니, 가장 적절한 가격에 64메가짜리 램을 제 손에 쥐어 주고야 말았습니다.

"자아식! 빨리 가서 보드에 꽂아보고 싶지? 빨리 가봐! 성공하면 우리 집에 전화해."

함박 웃음 지으며 집에 돌아와서 ram을 꽂고 컴퓨터를 돌려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야, 잘 된다."
"용주는 좋겠네! 아무튼 축하한다. 생일도 그렇고 컴도 그렇고."
"오늘 너무 고마웠어. 그럼 월요일에 보자."
"그래, 좋은 주말 보내~"

요즘은 마음이 좀 우울했었습니다. 일도 많았고 삶도 즐겁지 않아 보인 적도 많았습니다. 특히, 새로 시작된 나의 삶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집에서 컴퓨터를 보며,  얼굴에서 나는 크림 냄새를 맡으며, 감쪽같이 속이긴 했지만 리얼했던 친구의 화난 표정을 떠올리며...
친구들이 나를 향해 외쳐주었던 고마운 말 "생일 축하한다!"을 되내이며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광고 속의 대사 같지만 정말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0/04/02 18:21 2000/04/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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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것들


** 이 글은 조동식(한양95)의 카페에 올렸던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나에 대해 적어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 얘기하라면 멈칫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 건지를 모르겠다고 하기보다는 적어도 자신에 대해 소개하려면, '나'라는 사람을 이제까지 가꿔준 많은 일들을 모두 소개하고 그런 일들로 인해 내가 느꼈던 감정들, 깨달았던 사색들, 그로 인해 지금껏 의지적으로 노력해온 부분들을 모조리 털어놓아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인해서인지...

마치 고향집에 놀러 온 손자들에게 감자를 굽는 화로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얘기 해대는 여염집 할머니의 모습처럼 보일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혹은 어쩌면 그런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 상대방에겐 흥미롭지 않은 그저 그런 남의 얘기 취급당할 거란 생각 때문에 글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파편적인(?) 기호(嗜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련의 일들, 사람들, 가치들을 하나로 묶지 못하겠다. 그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틀을 발견한다면 좀더 쉽게 내 얘길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고, 그렇다고 일전에 썼던 깨달음으로 대치하기엔 동식이란 친구의 '부탁 무게'가 내겐 너무 크게 느껴진다. 무언가 새로운 글을 써야할 것 같다는 말이다. 해서, 간단하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이유를 짧게 달면 나에 대해 보다 '공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하나님: 내 삶의 근원. 부르짖으면 응답하는 분. 나를 사랑하시는 분

음악: 난,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특히 "조규찬의 음악": 다양성, 목소리의 깔끔함, 음악의 세련됨 때문

그림: 어릴 때 잘 그려서 상도 많이 받았다.

사람들: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 가장 소중히 대해야 하는 삶의 대상

설거지: 기름기를 닦아낸 그릇을 물로 씻을 때의 느낌이 좋다

비: 마음이 차분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거든

비를 가르며 지나가는 자동차 타이어 소리: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공감했지

영화: 감독의 눈에 투영된 현실의 재구성. 현실과 한 사람의 가치관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어머니: 날 위해 자신의 평생을 버린 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나는, 나에게 있어 사랑의 최고 본이 되는 분

태권도: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운동. 몸이 개발되는 것이 신기했음

춘천가는 기차: 끊임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정경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이 있었음

사랑했던 자매: 사랑했는데 사랑 안한다고 했었거든. 하하

영어: 꾸준히 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 학문.

강준만 교수, 인물과 사상: 한국 사회의 몇 안되는 희망(?)

기독교 세계관: 살아온 자리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살아갈 앞을 바르게 안내하는 내 가치관

짜장면 곱빼기: 어릴 때는 그 참맛을 알지 못했노라~

글쓰기: 머리에 있는 생각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노래 부르기: 노래 부르면 행복하걸랑

노가다: 땀을 흠뻑 흘린 뒤의 맑은 정신. 그 뒤에 벌어지는 술자리의 시끌벅적함.

책과 CD: 책은 500여권, CD는 300장 정도.

조카: 올 7월에 세상에 나오면 무지 이뻐해 줄 것임

시골길: 길 양편에 펼쳐진 논밭들. 허수아비와 참새, 메뚜기. 싫지 않은 두엄 냄새.

그 시골길에서 맞는 가을 아침: 높은 하늘과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

일몰: "마지막"이란 저런 느낌일거라 생각하게 만드는 풍경

현란한 도시의 네온사인: 내 마음에 따라 아름답게도 보이고 슬프게도 보이는 문명의 이기? 이기!

나: 이제 조금 익숙해지는... 서로 안지 어언 25년 된 친구
2000/03/16 18:44 2000/03/1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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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s law of life

살다보니 어느 덧 20대의 중반에 접어 들게 되었다. 비록 짧은 삶이었지만 순간순간 겪었던 일들을 통해 나름의 반성을 해보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야 겠다는 목표도 생기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는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내 안에 생겼다. 요 몇 년 사이에 추상적으로만 그려 오다가 최근에 접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결심문을 보고 내 나름대로의 삶의 법칙들을 정리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999. 5. 현재

1. 기도는 내 모든 계획과 행동에 우선한다.
그 말은 나의 계획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삶의 계획들을 세워 나가야 하며 기도를 통해 그 계획들이 검증되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2. 어떤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항상 성실하자. 또한, 매주, 매달, 매해별 평가를 갖도록 하자. 단순히 하나님께 맡긴다는 식의 나태를 기도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키지 말자.

3. 타인과 대화하다가 서로의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시비의 가림을 잠시 멈추도록 하자. 논쟁하는 가운데 감정이 섞이게 되면 서로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기가 쉽다.

4. 항상 타인을 나보단 낫게 여기자.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에게서 배울 점을 찾으려 노력하자. 나와는 다르다는 괴리감을 더 깊게하지 말자.

5. 내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때 실망하게 될 일, 내가 죽기 전에 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될 일을 하지 말자. 언제나 내 비밀스런 행동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여기고 행동하자.

6. 반복되는 일상, 매일 대하는
1999/05/05 18:47 1999/05/0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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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SION
: Jay가 '재희'가 되길 꿈꾸며...  (1999.5. 5.)

/ 김용주
 

Jay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해야겠다. 원래 나의 필명은 "My Jay"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90년대 중반 학번으로 나의 필명을 모르는 한양IVFer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이름은 다소 어거지(?)의 조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 나의 필명은 "male Y.J."였다. 같은 선교단체의 지부 내에 영주, 연정이 누나가 "Y.J."라고 많이 썼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성별을 표기한 것이다. 겉보기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첫 글자 만을 따서 "M.Y.J"로 만들고 보니 "My J."라고 쓰는게 더 그럴 듯해 보였다. 게다가 "my"라는 소유 대명사 뒤에 있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 같은 발음인 "jay"라고 쓰게 되었고, 그렇게 쓰기 시작한 "My Jay"라는 필명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쓰고 있다. 흔히 외국인들이 부르기 편하라고 "Jay"를 이름처럼 쓰곤 하기도 한다.

jay란 말은 영어로, 흔히 속된 말로 "수다장이" 혹은 "멍청이"정도라고 한다. 필명을 만들면서 내심 속으로 나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가 조소내지는 방관적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jay만큼 나와 잘 어울리는 말도 없는 듯 했다. 나는 내 스스로 상당히 낙천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년기의 중간중간에 있었던 많은 어려움들로 인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사회의 어두운 부분과, 생존이라는 이름아래 겪어야 하는 많은 고통들을 알게 되고 난 후로는 삶의 그런 어두운 부분이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했고 그렇게 살기로 다짐했었다. 흔히 어린 왕자나 바보이반으로 대표되는 순수함을 나 자신도 간직하고 싶어서 였을까...아무튼 그런 생각들로 마음을 정화(?)하며 살아 보려고 했던 시간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과정 속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1년동안 앞을 보지 못하기도 하고, 가정 내의 불화, 직장에서 쫓겨난 아버지, 어머니의 쓰러짐, 학교 내의 비리들...이런 일들 속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나를 더욱 현실과 거리가 생기도록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학에 발 붙이면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낙천적 성격을 유지했던 내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 나의 여자 친구도 그런 모습에 끌렸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밀려오는 현실의 문제 속에 나는 더이상 어린 왕자 흉내를 낼 수 없었고, 난 한없이 나의 정해진 것 하나없는 미래에 두려워해야만 했다.

휴학 후, 나는 나름대로 여러 경험을 해 보기 위해 공장에 들어가서 3개월동안 일을 해보기도 했고, 거기에서 나의 부족함으로 빚어진 다툼때문에 공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하지만, 몇가지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노동판에서 일하는 이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과 내 자신의 생각이 너무 협소했다는 것, 그리고 사회라는 이름의 구조를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그때 즈음해서 건강이 심하게 나빠졌고 군 문제로 훈련소 들어가기 한 달 전에는 내내 침대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내 예상보다 더 길어지게 된 휴학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참 좋은 사람이었지만 더이상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되었다.
사실, 힘든 시간이었다. 공장에서 있었던 일의 뒷 문제나 보충역이나마 군 복무가 시작되었는데 계속되는 건강의 악화, 내면의 흔들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서도 낙천적으로 보이기 위해 웃음이라는 가면을 들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곤 했다.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만나려면 꽤나 많은 수치의 약을 복용해야 했던 나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으리라. 결국, 그렇게 내 어리석었던 가치관은 허물어졌다. 광대처럼 사람들 앞에 당당히 웃음짓던, 그 거짓된 여유를 더이상 부릴 자신이 없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바보 이반이란 있을 수 없다는 쓰디쓴 교훈만을 배웠다.


휴학한 지, 이제 3년째에 접어들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그 무섭다는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한 지도 꽤나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다. 많은 사람도 만나보고 그들의 얘기를 통해 많은 도움도 받았다.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조금은 다른 것인 것 같다. 사실, 알고 보면 나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현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 반성도 없고 삶에 대해 바르게 대처하고자 하는 열정도 없이, 그저 그것들과는 벽을 쌓고 어린 왕자처럼 예쁘게, 혹은 몸 하나 안 더럽히고 순수함을 유지하려 했던 백면서생의 모습의 전형인 나 자신을 바라 보았다. 리스트의 손처럼 가냘픔이 사라지고 군데군데 굳은 살이 붙으면서, 삶과 직면하고 현실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나는 내 어리석은 과오들이 나를 두렵게 한 근본 원인이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최근에는 "Jay"라는 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법을 골몰하던 중, "재희(再喜)"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말은 "rejoice"와 같다.
"다시 기뻐함"
이제 나에게 붙여야 할 말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에서 뼈가 굳어지고 생각이 넓어지는 요즈음에 이제는 현실과 벽을 쌓지 않고, 그 두려움을 바라 보면서 내심 웃을 수 있는 준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쁜 건강 가운데에서도, 힘든 일상 속에서도 이제는 자족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내년에는 다시 웃는 내 모습을 캠퍼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의미는 3년 전과는 사뭇 틀리겠지만...
1999/05/05 18:45 1999/05/05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