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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옷차림, 전략이다

　

/이민아 (한겨레)

‘옷차림도 전략입니다’, 라고 어느 광고 카피는 말했다. 말 그대로 한 남자의 전략이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었다. 한국사회는 유시민의 옷에 관해 잠시 이성을 잃었다. 이중 백미는 전여옥씨가 쓴 ‘옷차림이 마음에 드냐고, 관심없다’라는 글이다. 정말로 유시민의 옷차림에 관심없다면 이런 글을 쓰지 말아야 할텐데, 꽤나 긴 글이다. 전여옥은 “낡은 와이셔츠를 깨끗이 빨아 입고 유행 지난 양복을 깔끔하게 다려입고 다소 촌스런 넥타이를 매고 나와 형형한 눈빛으로 국회의원 선서를 할 유시민을 상상했다”라고 말한다. 유시민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았으면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선서를 한다는 것까지 알았을까 장담컨대 이 사실을 안 대한민국 국민은 전체의 0.01%도 안된다.

유시민 복장 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한 제스쳐로 여러 가지 화두를 던졌다는 것이다. 보통 국회의원들은 신문지상에 이름 한줄 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사진기자들의 표적이 되기 위해 오징어를 흔들기도 한다. 그런 모든 노력을 유시민은 한방에 해결했다. 이런 효과를 경영학에서는 ‘레버리지 효과’라고 한다. 베네통에서 사용한 마케팅 기법으로, 베네통이 사진광고를 통해 논란이 됨직한 소재를 던지기만 하면 모든 홍보는 신문 방송에서 해준다. 자본이 없는 회사일수록 이 전략은 유효하다. 막대한 광고비용을 매스미디어에서 대신 지출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베네통의 광고에는 정당한 내부논리가 있다. 흑백의 어우러짐, 에이즈 방지 등 어느 문화에서 봐서는 금기이지만 어느 문화에서 봐서는 그 금기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는 그런 소재다. 예를 들어 수녀와 신부가 키스하는 사진의 경우 이탈리아에서는 문제가 되지만 미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이즈 환자의 피부를 찍은 사진의 경우는 미국에서는 문제가 되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안이 이런 경우에는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경우에는 ‘내가’ 그 객체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로 귀결된다.

이것이 정확히 한국사회에 일어난 일이다. 유시민의 복장 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나 유시민 싫어” “나 유시민 좋아”. 이 말은 이렇게 변형될 수도 있다. “튈려고 별짓 다하는군” “캐주얼이 어때서”. 결국 이 모든 것은 유시민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을 드러내는 리트머스지로 귀결된다.

왜 이 시점에서 그게 필요한가. 현재 정국에서는 한나라당에도 민주당에도 뚜렷한 헤게모니가 없다. 이 상황에서 개혁당이 정국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유시민은 ‘유시민 레버리지 효과’를 보여줘야 한다. 유시민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이토록 강렬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장기로 치자면 유시민은 포를 쏜 것과 같다. 한나라당 의원 무리를 가뿐히 넘어 적진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음 수로서 사뿐히 포를 거둬들였다. 정장을 입음으로써 어제의 공격을 아무 것도 아닌 양 보이게 만든 것이다. 포를 움직인 목적은 적진을 흩트리고 자기 진영의 전략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이제 포 주변에 차와 마가 받쳐줄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주목감이다.

호오가 이번 건을 둘러싼 반응이지, 정의가 이번 건을 둘러싼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앞에서 미리 밝혔다. 굳이 이 문제에 정의가 어느 편에 있는가를 따지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서 나는 정당성이 유시민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드레스 코드를 운운하며 유시민을 예의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틀렸다. 왜

첫째 관계법령상 유시민은 그날 그 장소에서 자기가 원하는 옷을 입을 복장의 자유가 있다. 일부 단순무식한 사람들은 아예 발가벗고 등원하지 그랬느냐고 말한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에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으로 판단되어 법령의 저촉을 받는다. 법률적 정의는 유시민에게 있다. 둘째 “국회에서 입어야 할 암묵적인 드레스 코드가 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유시민에게 정당성이 있다. 유시민은 이미 자기가 이런 옷을 입고 가겠다는 것을 사전예고했다. 이는 서구적 시각으로 봤을 때 매우 중요하다. 만일 드레스 코드가 진실로 국회의 신성을 모독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면, 양당 대표는 유시민에게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은 이상 유시민은 문화적으로도 암묵적 동의를 얻은 것이다. 게다가 유시민은 “일하는 곳이니 일하기에 편한 복장”이라는 자기 드레스 코드에 대한 충실한 내부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시도는 유시민만이 아니고 어느 누구든 해왔던 일이다.

미국의 한 여배우는 오스카 시상식 때마다 간단한 평상복을 입고 레드카펫을 밟는다. 단 한번 입기 위해 몇천달러나 하는 비싼 옷을 입는 배우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오스카 시상식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이번 건을 두고 독일의 녹색당 청바지 등원건과 요시카 피셔의 캐주얼 복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하다. 유시민은 “난 너희들과 다르다“ “내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국회는 너희들과 다르다”라는 것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시민은 드레스 코드를 무시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상기한 것이며, 국회를 무시한 것이 아니고 국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이다. 유시민이 자기 드레스 코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만큼의 강한 내부논리를,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비즈니스 포멀 수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전여옥이 “목사님”의 “로만 칼라”라고 표현한 비즈니스 수트를 입은 국회의원들이 멱살잡이, 욕설, 등원지각에 꾸벅꾸벅 졸기를 할 수 있는가

이번 일에서 내가 흥미롭게 주목하는 것은 유시민의 사람부리는 능력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 사람이 탁월한 정치인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건에서 유시민이 부린 사람들을 보라. 유시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의적으로 웃으며 인사를 다니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당 일부 의원의 반응은 가히 알레르기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레버리지가 다시 한번 생긴다. 쉽게 말해 오버한 거다. 나는 아무리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단무지라 할지라도 유시민의 전략에 이렇게 쉽게 넘어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이들의 사고방식에는 두 번 생각한다는 것이 없는 것 같다. 힘으로, 쪽수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제 언론은 유시민과 한나라당의 반응에 대해 기사를 쓴다. 조중동은 공들여 기사를 쓰고 사진을 곁들여 내보낸다. 직함은 방송인이지만 사실상 조선일보의 외부필자로 더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전여옥도 공식적인 신문지상을 통해 유시민의 패션감각과 외모, 얼굴, 몸매에까지 자상한 충고를 던진다. 오버는 언론의 숙명이다.

레버리지는 한번 더 생긴다. 이제 네티즌은 마치 자기 일인 양 열심히 화내고 열심히 변호한다. 여기서 오버가 한번 더 생기고 세번째 레버리지가 생긴다. 이 모든 것은 유시민이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티셔츠를 입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얼마나 대담한 용병술인가 이로써 유시민은 이미 성공했다. 글 잘쓰고 말 잘하는 사람만으로 알고 있었던 유시민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 것인지 한국 정계는 주목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민아/미국 퍼듀대학 경영학 석사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