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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또 다른 비극

/한비야 (한겨레)

여기는 서아프리카 씨에라리온의 코노지역. 10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방금 끝난 곳이다. 남한면적의 3분의 2, 인구 5백만의 나라에서 내전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무려 백만 명. 특히 기니와 국경을 맞댄 이 지역은 반군이 끝까지 저항했던 곳이라 전쟁의 폐해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긴급구호팀에게는 전쟁 직후 진행되는 구호활동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코노는 작년에 보았던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연상케 했다. 도시전체에 멀쩡한 건물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초토화되었다. 남은 건물 벽도 온통 금이 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우리 숙소 앞 뒤 건물에도 총알 자국과 불탄 흔적이 역력하다. 당장이라도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반군 소년병들이 총을 들고 튀어나올 것 같다.

1991년 시작된 내전은 무능한 정부에 맞선 반군의 정치적 항쟁이 발단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족 사이의 갈등양상을 보였다. 한때 전국의 3분의 2를 반군이 장악하면서 내전의 끝이 보이지 않다가 1996년 유엔이 평화협정에 적극 개입해 2001년 12월 드디어 공식종전이 되었다. 방금 전쟁을 치른 사람들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못해 엽기적이다. 36살 쿰바 아줌마. 2년전 반군의 습격을 받아 갓난아이를 들쳐업고 도망가다가 강가에서 붙들렸다. 반군 소년병들은 아줌마에게 업고 있던 아이를 강에다 던지라고 명령했고 이를 거부하자 아이를 빼앗아 강물에 던져버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아줌마를 집단 성폭행 했단다. 그것도 모자라 인근 민가로 끌고가 함께 잡힌 동네 남자 8명의 팔뚝을 차례대로 작두로 자르고, 기둥에 묶어 놓고 불을 지른 후 퇴각했다고 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쿰바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기 아이를 강물에 던지면서, 자기를 윤간하면서, 사람들 손목을 자르면서 낄낄거리던 15살 남짓 소년병들의 웃음소리를.

이런 집단광기의 예는 끝이 없다. 임산부 배 안에 있는 아기의 성별에 내기를 건 후, 칼로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 알아보았다는 얘기. 그 내기에서 진 소년병이 그 아이를 그대로 바위에 쳐죽였다는 얘기. 아버지에게 딸을, 아들에게 어머니를 강제로 근친강간시킨 얘기. 7살 때 반군에게 잡혀 3년간 성노리개로 있다가 탈출한 여자아이는 실어증이었고, 또 그렇게 끌려가 불가항력으로 반군의 아이를 둘이나 낳은 18살 엄마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아직도 우물바닥을 청소하면 시체가 무더기로 나오고 건기의 강바닥을 들여다보면 해골투성이란다.

그 밖에도 신문에는 차마 공개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일들을 당사자나 목격자의 증언과 현장방문을 통해서 보고 들었다. 번번이 경악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질렀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만행의 주체인 소년병은 줄잡아 5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4년간 소년병이었던 청년에게 다른 쪽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쟁 중 부모를 잃고 갈 곳이 없어 반군에 들어갔단다. 사람을 죽여 보았냐니까 너무나 당연히 그렇단다. 성폭행도 방화도 수없이 했고 민간인 팔다리도 셀 수 없이 잘랐단다. 그런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니까 반군 지도부가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명령에 불복하면 죽인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다시 전쟁이 나면 또 반군에 합류할 거냐고 물었다. 절대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놀랍게도 그는 `그렇다’고 했다. 전쟁 때문에 학교를 못 다녀 일자무식이라 앞으로도 아무 희망이 없으니 힘있는 곳에 기대어 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37도가 넘는 땡볕 아래였는데도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잔악한 가해자로만 여겼던 소년병도 뒤집어보니 명백한 피해자구나. 전쟁의 전모와 실체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어떤 전쟁도 예사롭게 볼 수 없을 것 같다. 언론에서 전하는 최신무기의 성능과 전과의 수치 뒤에는 이런 무고한 아이와 여자들, 가해자이자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명분도 피해갈 수 없는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