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나
　

/박은석 (한겨레, "왜냐면")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시작으로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해 수없이 많은 맹세를 하며 살아왔다. 자신을 존중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 나이에 우리는 유독 나라에 대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겠다는 굳은 맹세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개인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기에 앞서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가짐부터 배워왔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교육의 필연적 결과일까 최근 유시민 의원의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비판 발언은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유시민 의원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포함한 일련의 국민의례가 파시즘과 일제 잔재라 비판하였다. 국민의례는 일본(일장기)에 충성을 강요당했던 일제 강점기의 경험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며, 박정희 군사정권에 이르러 독재정치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부려 쓴 통치수단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일장기와 태극기를 동일선에서 볼 수 없으며, 미국 등에서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국민의례를 파시즘의 잔재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국민의례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한, 그것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시도하였던 한 국회의원의 발언에 대해 이토록 압도적인 비판여론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국민의례는 분명히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례에 부정적 측면이 전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례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적 사고를 수반하는데, 그것은 나라에 충성을 강조하는 행위가 개인에 앞서 나라 전체를 우선하는 태도를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체주의의 극단을 보여주었던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에서 국가 상징에 대한 의례는 국민의 복종을 종용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국민의례 속에 잠재한 전체주의적 사고를 경계하는 것은 개인을 존중하는 민주사회에서 마땅히 기울여야 할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례의 긍정적 기능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바로 우리가 이미 국민의례 속에 숨어 있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전체주의적 사고를 경계한다고 해서 전체로서 국가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이 생존에 필요한 기본 환경을 제공하는 나라는 개인의 존재에서 근본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성립한 근대의 민주사회에서 전체는 결코 개인보다 우선하는 개념이 아니다. 전체를 구성하는 개인이야말로 사회와 제도에 앞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역시 나라를 위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 유 의원의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을 살펴보면, 나라의 소중함에 치우친 나머지 개인의 존엄성을 간과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올바른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전체라는 미명 아래 억눌렸던 개인주의를 올바르게 복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라와 개인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볼 때, 국민의례의 전체주의적 속성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에서는 유치원생들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기하도록 한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뚜렷한 개인주의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일제와 군사 독재가 드리운 전체주의적 그늘이 아직도 짙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그런 미국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주의에 대한 정당한 가치 평가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유 의원의 발언은 바로 이런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국민의례를 따르기에 앞서 우리는 개인의 가치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박은석/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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