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8·15 평양 축전에 다녀온 가수 이정열이다. 공연으로 방송 진행으로 분주한 여름을 보내던 나에게 `민화협'이라는 조금은 낯선 단체로부터 (평양으로의) `출연 요청'을 받은 건 다음 음반을 위한 회의를 하던 한 녹음실의 사무실에서였다. 부산 광주도 아니고 `평양'이라니…. 흔쾌히 승락하고 잡혀진 일정을 조정했다. 불허와 허가의 번복을 찰나적으로 겪으면서 준비하는 과정의 곡절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곡절은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 내에 비치된 신문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됐다. 3대헌장 기념탑 제막식의 `참가'와 `참관'은 `불참'의 각서로 일단락 됐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각서의 내용은 불행히도 방북단 모두에게 숙지되지 못한듯 했다. 내가 탑승했던 2호기에서는 물론이고, 그 전날 받은 방북교육장에서도 `돌출행동' 자제와 뜻모를 `의병론' 외엔 방북일정 및 `방명록' 요주의 사항은 고지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15일과 16일의 개·폐막식을 놓고 보여준 방북단의 두 모습은 가뜩이나 낯선 풍경에 어지러운 내 머리에 많은 고민을 더해 주었다. `각서 이행'과 `손님으로서의 예의'가 회의실에서 뜨겁게 논의될 즈음, 방북단이 이미 탑승해 있던 몇대의 버스가 출발하였다. 로비에 있던 나는 호텔 내부 답사를 하는 것으로 장소변경을 하게 된다. 폐막식은 남쪽 인사들이 도착 하기 전에 서둘러 끝냈음을 뒤에 알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방북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은 살풍경이었다. 1시간 전 순안공항에서 환송나온 어린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은 손으로 `죄인단'을 바라보는 공안당국의 시선을 의식하며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언론은 개·폐막식 참석이 아닌 `만경대 정신'으로 여론몰이를 시하고 있었다. 연행된 사람 중 `잠입 탈출 회합'을 했다는 범민련 인사와 강정구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불구속으로 풀려난 걸 보면서, '개·폐막식'은 사라지고 `돌출행동' `국보법'이 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만경대 정신'에서 `반공교육'의 위력을 또다시 깨닫는다. 나 역시 `만경대'란 단어에서 근본 모를 불온함을 느끼니 말이다. 말장난 하기 좋아하는 내 습성은 `낙성대 정신'이란 말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낙성대에는 강감찬 장군이 있지 않은가.
학자의 학술적 견해에 대한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광란극'이란 표현을 아끼지 않는 현실의 미성숙함을 통감하며, 평양 곳곳에서 만난 구호와 조형물에서 느낀 막막함을 다시 느껴본다. 남과 북의 체제는 동시에 견고하다. 그 두 체제가 하나가 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만경대 정신'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인가.
그러고 보니 `극'에 출연한 `배우'인 나는 정말 큰일이다. `적국'의 수도에서 `인민'들을 앞에 두고 극장에서 노래를 하였으니 제대로 `고무·찬양'일텐데…. 내가 부른 `소낙비'의 원작자인 `밥 딜런'역시 `위험'하다. 이어진 곡 `내나라 내겨레', `남누리 북누리'의 초연자들도 같은 처지이겠고.
내가 연주한 기타와 하모니카, 의상은 결정적 증거물일 수 있겠지. 그러고 보니 더더욱 위험한 단체는 한국예술인총연합이라 할 수 있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유일하게 선물을 드린 엄청난 돌출행동을 보였으니 말이다. 선물의 영향이었는지 예총은 북의 관계자와 `회합'하여 총회에 북의 예술단을 초청하는 `통신'을 하였으니, 자못 이후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막걸리 반공법이란 웃지못할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제 그 말을 만경대 국보법으로 바꿔야 할 `광란극' 세상이다.
잘 가꿔진 유적지와 조형물과, 동시에 발견한 낙후된 경제력과 그로 인한 `인민'들의 어려운 생활. 그리고 그 생활 위에 존재하는 `위대'와 `경애'의 인격체에 막막함을 느낀 한 가수는 이제 집에 돌아와 비슷한 막막함에 머리를 흔든다.
유행처럼 번진다는 이민이란 말이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이 새벽에 혁명가극을 보고나서 '북에서 립씽크를 하면 뭐라고 할까'라든지, 만경대 생가를 보고 박대통령 생가에도 방명록이 있을까 라든지, 평양 청춘거리에 있는 청춘호텔을 소개하던 안내원 동무의 말을 듣고 속으로 한참 웃었던 일과, `친북단체는 북으로 가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보고 방명록에 쓴 내 글을 유도적으로 인터뷰하던 북의 방송기자의 미숙을 떠올린 나의 `불경'을 고백한다.
하나의 땅
하나의 나라
하나의 음악
가수 이정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