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 <프리섹스주의자들에게>

김상태, <프리섹스주의자들에게>

**이 글은 <한겨레>에서 발췌한 것으로 고명섭 기자의 서평입니다.

김상태(35, 한국노동이론정책소 연구원)씨는 지난 96년 <1990년대 한국 사회 섹스라는 기호를 다루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펴내, 90년대 한국 문학에 깃든 성담론의 허실을 독특하고도 날카로운 관점으로 분석한 바 있다. 그가 분석의 대상을 90년대 성문화 전체로 확대한 새 비평서 <프리섹스주의자들에게>를 내놓았다.

<프리섹스주의자들에게>는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90년대를 풍미하는 '방종한' 삶의 형태가 왜 틀린 것인지를 입증하려는 힘겨운 노력의 소산이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지점은 성적 욕망의 다양성과 평등성이다. 그가 보기에 어떠한 행태의 성적 탐닉도 그 자체로는 가타부타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오히려 탐닉의 다양성이 삶의 풍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그는 '성적 시, 공간의 특이성'이라는 개념을 끌어낸다. 이 개념은 성(행위)라는 것이 인격체마다 그 고유의 열정과 방식으로 실현되며 그런 만큼 그것은 저마다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는 뜻을 함유한다. 모든 인간이 성적 시, 공간의 특이성을 실현할 권리와 가능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인간의 욕망은 평등하다."

다소 추상적인 이 논의를 지은이는 이제 구체적인 현실, 곧 90년대 한국사회에 결부시킨다. 눈을 현실로 돌리자마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모두에게 평등했던 욕망은, 실제의 마당에서는 전혀 평등하지 않게 나타난다. 소수의 사람들은 욕망을 맘껏 채우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패배하고 만다.

지은이는 그것을 성적 이상형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광고, 텔리비젼, 영화 같은 대중매체에서 선전하는, 성적 매력을 지닌 여자 또는 남자의 이상적인 상으로서 '타입'은 그것을 실현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절대다수에게 좌절감만 안겨준다. 그리고 모두들 허깨비같은 '타입'을 마음 속에 품고 살면서 이것을 따라잡으려고 헛된 노력을 기울인다.

비판의 화살은 이 대목에서 성적 자유주의자들에게 돌아간다. 이 자유주의자들은 자유 분방한 섹스를 찬양하고 부추긴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볼 때 자유분방한 섹스를 즐길 여유(돈)를 가진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성적 방종'을 일삼는 소수는 90년대 이전에도 있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소수의 가치가 공공연하게 주장될 뿐만 아니라, 지배적인 가치로 군림하게 됐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이 지점에서 자본의 음모를 발견한다. 90년대 들어 한국 자본주의는 성 또는 '성의 자유'를 매개로 삼을 때 상품 판매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성적 자유주의를 마케팅 전략으로 삼았다. 따라서 성적 자유주의란 본질적으로 자본의 목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외침이 더욱 부도덕한 것은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성적 자유를 억압한다는 데 있다. 자본이 제조해 놓은 성적 매력의 이상형은 개별 인격체들의 고유한 성적 가치를 파괴하고, 그에 따라 가정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그 결과 모두들 성에 굶주려 밖으로 떠돌게 되지만 참다운 인격적 관계가 없는 그곳에서 해방적 충족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