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실명비판

/ 강준만 (2001. 9. 13. 한겨레)

대학원생 시절엔 `좌파'였고 A 신문에서 일할 땐 진보적이었던 기자가 극우적인 B 신문으로 옮겨가선 `매카시즘'으로 가득 찬 기사를 썼다. 그 기자가 신문사의 사내 압력에 굴복해 그런 기사를 썼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 법원은 그런 주장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법은 기자의 자율성을 전제하며 그걸 존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자가 사주의 `마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으며, 일선 취재 기사가 송고한 기사를 데스크가 내용까지 마음대로 뜯어 고치기도 한다는 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법과 현실 사이의 이러한 괴리는 최근 진중권씨가 제안한 `언론인 실명 비판'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진씨는 언론비판을 할 때에 “기자의 이름을 불러주자”고 말한다. 예비군복 입고 하던 짓도 사복 입으면 잘 안하는 원리에 비추어 기자 개개인을 실명 비판해 책임을 묻는 것이 언론개혁을 위해 긴요하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언론계 일각에선 일선 취재 기자에게 자율성이 없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언론인 실명 비판'은 권한보다 책임을 더 크게 묻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자들은 언론개혁의 구경꾼이 되겠다는 자세에 근거한 것이어서 받아 들이기 어렵다. 기자들은 자율성을 갖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내용의 기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는 기존 관행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걸 바꾸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언론인 실명 비판'을 정착시키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있다. `인물 비판' 자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다. 문화적으로 집단주의 정서가 강한 한국인들은 연대책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뭐든지 옥석 구분을 하지 않고 한꺼번에 싸잡아 욕하는 것이 범국민적인 취미 생활이 돼 버렸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는 건 그런 문화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동원되는 논리다. 원래 `구조'나 `제도'가 문제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좌파들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극우 지식인들까지 `구조'와 `제도' 타령을 해대면서 `인물 비판'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물 비판'은 `구조'와 `제도'의 문제를 은폐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궤변에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인물 비판'만 하자는 게 아니잖은가. 한국 사회에서 `구조'와 `제도'를 문제삼는 담론은 이미 과잉이다. 과잉임에도 불구하고 `구조' 및 `제도'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러한 개혁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사람이 책임지는 문화가 없는데, `구조' 및 `제도' 개혁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책임을 묻고자 하는 `인물 비판'과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인물 장사'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한국 신문들이 양산해내고 있는 전면 인터뷰 기사를 잘 살펴 보시라. 모든 게 찬사 일변도다. 그런 잘못된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인물 비판'은 왕성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인물 비판'에 대한 거부감은 무언가 폭로되고 비판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득권 세력의 수구주의와 이 세력과의 평화공존 체제에 안주한 사람들의 보신주의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언론 비판을 할 때에 반드시 기자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주자. 이는 기자들을 사주나 데스크의 `마름'으로 폄하하지 않고 그들의 인격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두 손 들고 환영을 해야 할 것이다.

강준만/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