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화해·통일 국제회의' 커밍스·최장집 대담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와 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은 지난 13~14일 연세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열린 `세계평화를 위한 한반도 화해와 통일 국제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8개월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반갑게 긴 악수를 나눴다. 커밍스 교수는 지난해 말 <한겨레>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냉전해체와 평화' 국제학술회의에도 참석한 바 있다.
국제회의 둘쨋날, 대담을 위해 두사람은 연세대 상남경영관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대담은 자연스럽게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등장 이후 급변한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등장 이후 일본에 모아졌다. 커밍스 교수는 80년대 한국전쟁을 수정주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의 기원>이란 저서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한국학 학자다.

최 교수= 부시 행정부 외교정책의 핵심은 미사일방어(MD)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군사 중시의 새로운 외교정책 목표를 추구하면서 미-중 관계는 급변하고 있다. 신국제질서를 탈냉전이라고 하지만 미-중 관계는 냉전시기보다 더 긴장 국면이다. 미-중 관계가 대결로 치닫게 되면 동북아 평화는 물론 남북한 화해와 공존도 위협받을 것이다.

커밍스 교수=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정책 초점은 군사에서 경제로 이동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유도와 같은 경제관계에 비중을 두었던 정책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중국을 자극해 군사력을 증대시키기 보다는 주로 경제에 치중하여 중국을 신경제질서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부시 행정부에서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만이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을 따르고 있는데, 그의 영향력은 미약하다. 미사일방어계획 추진자인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신무기 개발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설정한 적이 북한이다. 북한은 미국의회나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이나 로비를 행사할 지지층이 없다. 럼스펠드 장관은 정책적 목적을 위해 중국까지 주적 개념에 포함시킬 소지가 크다.

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에 이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을 두고 탈냉전과정에서 해체됐던 북-중-러 북방 3각협력체제를 복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다. 냉전시기에서와 같은 한-미-일 3국 공조체제와 북-중-러의 북방 3각체제로의 양극화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부시 행정부의 대중, 대북 강경정책의 부정적 결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커밍스= 냉전기 북-중-러의 3각 동맹이 재연되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경제력은 한국보다 약한 상태이며 특히 해군력은 전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중국이 미국에 위협적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현재는 옛 소련과 같은 위협적 존재가 아니다. 김 위원장의 방러 목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미사일방어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한 압력을 행사하도록 요청하는 데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수확은 많지 않았다. 러시아의 대북정책은 91년 이후 붕괴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의 방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답방 형태이며 고 김일성 주석의 행적을 따라 철도여행을 한 것이다. 나는 그의 이번 철도여행이 유럽연합과 한국에서 일고 있는 부산-파리간 철도 연결을 촉진시킬 상징적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려되는 것은 미·일관계이다. 6~7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미-일 3국공조는 매우 효과적이고 돈독했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기를 희망한다. 미국의 의도는 일본을 미사일방어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려는 것이다. 별들의 전쟁(스타워즈) 프로그램에 일본을 끌어들이려 했던 레이전 행정부의 정책과 비슷하다.

최= 레이건 대통령의 스타워즈 정책은 냉전기에 추진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미사일방어정책은 탈냉전기에 추진되고 있다. 물론 정치군사전략이 한 시대의 사회적 조건이나 가치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냉전적 상황이 특정지역과 특정시기에 국지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탈냉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지금 부시 행정부가 냉전시대와 같은 대결상황을 부활시키려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커밍스= 미사일방어 프로그램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세계는 매우 온화한 안보적 환경을 즐기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에 대항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도 미사일을 미국에 발사하면 전면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비를 증가하기 위한 노력은 명분이 전혀 없다. 미사일방어계획은 군산복합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가상적 위협을 조성해 미사일방어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일방주의와 고립주의를 추구하는 듯하다. 내 평생 미국의 외교정책이 이렇게 최악인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최= 같은 생각이다. 아마도 부시는 국내외의 저항에 관계없이 미사일방어계획을 추진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불량국가 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 때문이 아니라 부시의 등장을 도운 군산복합체와 하이테크 산업의 경제적 요구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사일방어정책은 군사적 케인즈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커밍스= 부시 대통령은 감세에는 성공했지만 다른 것을 추진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상하원 모두 감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2002년에 하원 중간선거에서 진다면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사일방어계획을 포기할 수도 있다. 미사일방어계획은 8-10년 뒤의 것이고 그 때는 공화당이 집권하지 못하는 시기일 수도 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방어계획을 포기하게 하기 위한 국내외적 압력은 매우 중요하다.

최= 현 시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 특히 대북포용정책을 평가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야당과 비판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의 답방을 구걸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대북포용정책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일반국민들 사이에서도 최근 정부의 대북정책이 너무 수동적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부시 행정부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대북정책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커밍스=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한국전 이후 가장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대결정책은 아무런 해결책을 가져오지 않고 북한의 고립을 강화시킬 뿐이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핵협정을 준수하고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협상 용의를 갖고 있었다. 만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빨리 정리됐다면 클린턴의 방북이 이뤄졌을 것이고 한반도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역사가 멈춘 것 같다. 마치 물이 없어서 항해하던 배가 멈춘 것처럼…. 김 대통령은 대북정책과 관련해 미국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의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지금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몇주 안에 북한을 방문할 것이다. 그런 다음 10월 중순 부시 대통령은 중국에서 장 주석을 만날 예정이다. 내 생각으론 10월까지 김 대통령의 포용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없다면 김 대통령은 미국과의 안보관계 상 몇가지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오키나와와 한국에 주둔군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이것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철수할 경우 일본의 군사적 역할의 강화를 원하고 있다. 북한도 남한과 미국과의 대화를 단절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2차 정상회담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주체성을 주장해 왔는데 미국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울 답방을 감행한다면 부시 행정부가 조성하는 북한위협론을 상쇄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북정책을 검토한 뒤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언제 어디서고 대화에 임할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대화의 수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10월 이전에는 그 어떤 진전도 없을 것이다.

최= 이번 8·15는 새천년 들어 처음 맞이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8·15는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의미 못지않게 남북한 분단을 상징하는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올해의 8·15는 부시 행정부의 지나친 강경정책과 일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몰역사적 태도로 인해 매우 착잡한 심경으로 맞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커밍스= 지난달에 몇주 일본에 머물렀다. 일본의 입장은 매우 놀랍다. 부시 행정부를 보는 듯했다.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기 싫어하는 일본의 태도에 있다.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 사과·반성했다. 그리고 유럽연합에서 비중이 큰 회원으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사과도 역사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도 하지 않는다. 이해하기 매우 힘들다. 하지만 역사교과서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관련해 고이즈미 총리는 옛날 스타일이 아닌 신세대 스타 기질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사참배는 실수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우익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최= 냉전체제는 해체되었지만 아직도 냉전 이후체제가 새로운 국제질서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국제관계를 신냉전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냉전이후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본다. 다시 냉전체제 혹은 그와 유사한 체제로 돌아갈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커밍스= 탈냉전 이후 미국의 역할과 영향력에는 변화가 없으며 부시 행정부는 아시아 지역에서 냉전적 상황을 재현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세계는 국경없는 세계는 아니지만, 보다 개방된 국경의 세계가 시대적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외교정책 변화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남북한은 부시 행정부 정책과 상관없이 화해를 지속해야 한다고 본다.

정리/류재훈기자 hoonie@hani.co.kr
사진/김봉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