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 비판

 

 

 "양비론", 그 어려운 화두에 관하여 

 내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면서 했던 말이 있다.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중략)... 이 사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양비론에 대한 반성의 글이 포함되어있다. (양비론이라는 것은 어떤 두 부류의 시시비비를 가림없이 양쪽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싸잡아 비판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이 부분은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스스로는 양비론에 대한 반감과 거기에 대한 책들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용했던 말처럼 "양비론에 대한 반성의 글"은 내 홈페이지에 거의 싣지 않았었다.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문제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직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여전히 나는 많은 시간을 지식 습득과 독서, 학업에 투자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홈페이지의 토론실과 몇몇 인터넷 사이트, 그리고 잡지 <복음과 상황>에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일들이 내가 그나마 여유로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이며, 정상적인 일상 생활 가운데에서는 나름의 최선으로 살고 있다. (정말 구차한 변명이 되고 있는 듯 하다)
 그럼에도 항상 홈페이지의 다른 글에 비해 이 "양비론"이라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글을 소개하고 싶었다. 영화나 음악에 대한 글들 같은 경우는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아도 별 부담이 없었는데, 정작 이 "양비론"은 항상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하는 화두였음에도 글 하나 제대로 소개하고 있지 않는 점에 대해 스스로에게 내심 작은 불만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양비론" 문제는 내 자신이 무어라고 말하기엔 좀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할 말이 없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내 위치에서 한국의 '극우 어른들'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가져다 댈 입장이 아니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막일군으로 기업체에 취직했을 때의 일이다. 담당 계장님과 인사문제로 약간의 의견차가 생겨서 가볍게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논지를 약간 설명하던 차였는데, 몇 분 정도 듣던 계장님이 입을 떼셨다. "너 몇 살이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나는 네 나이 때, 군말않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어!"

 양비론 문제가 원론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토론하면서도 상대방이 인격적 존재로 내 앞에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려 하며, 또한 실지로 그렇게 생각함으로 글쓰기에 있어서도 많은 주의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내 앞에 많은 '극우 어른들'이 있다는 가정을 하면 내 입장, 내 위치에서 20세기의 100년 가운데에서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양비론'에 대해 글을 쓸 자신이 없다.

 그러나, 하기는 해야한다. 그리고 나의 세대가 사회에서 보수로 자리하는 시기에는 이 깊이 뿌리내린 '양비론'이 와해되기를 바라기에 더욱 많은 이들이 이 생각들에 공감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이런 나의 긴장점을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끌어 옴으로 해소하려 한다. 
 얼마 전 아주 감명깊게(?) 읽은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씨의 새 책 <쎄느 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 실린 내용을 조금 인용할까 한다.

 

"수학과 글쓰기 1"중에서 

 ... 내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수학과 글쓰기 사이의 관계에 대한 토론과 만나고 한 가지 생각해 본 것이 있는데, 한국의 논평에서 흔히 보는 양비론이었다. 한국의 신문 칼럼리스트를 비롯한 논평자들은 양비론을 무척 애용한다. 그들은 '비판적 기회주의자'들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주장을 분석하다보면, 결국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다"라는 주장에 비판을 더한 것이 된다. 산술적으로 표현하면, '양비론=양시론+비판'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한국당이 정리해고제를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 적지 않은 입들이 "날치기한 신한국당도 잘못했지만 파업하는 노동자들도 옳지 않다"고 떠들어댄다. 양쪽을 모두 비판하면서 양쪽으로 자기보신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드러나 있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지롱드에도 끼지 않고 산악당에도 끼지 않아서 끝까지 살아남은 중간파들을 몹시 경멸했다. 그들은 지롱드 편도 아니고 산악당 편도 아니었는데 또한 지롱드 편이었고 산악당 편이었다. 어디서나 난시(亂時)에 살아 남는 데에는 양비론보다 더 좋은 보신책이 없는 것 같다. 행동보다 말로 한몫 보는 현대의 양비론자들은 비유컨데,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양쪽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과 비슷하다. 자신을 내세우면서 싸움의 현장에서 떠나 있다. 현실이란 좌표 바깥에서 고고한 비판 놀음을 즐기는 것이다.
 프랑스의 텔레비전 토론장이나 신문 사설과 같은 칼럼에서는 양비론을 발견하기 어렵다. 간혹 토론장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은 즉시 "그래서 당신이 속한 진영이 어디란 말이냐?"라는 추궁을 들어야 한다. 양비론을 펴는 것은 사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토론을 죽이는 행위이다. 그래서 토론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 사회에선 더욱 양비론이 들어설 틈이 없다. 그런 논리를 폈다간 지금은 작고한 장 에데르날리에 같은 독설가 토론 진행자에게 "당신은 변증법도 모르냐?" 또는 "당신의 논리는 쓰레기 통에 갔다 버려라!"는 말을 코앞에서 들어야 한다.

 나는 양비론에 관련된 두 나라의 차이에 관하여, 사람들 각자가 수학적인 좌표 분석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서 온 것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사회 현상을 바라볼 때, 프랑스인들은 '좌표'를 설정, 플러스 쪽과 마이너스 쪽의 선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는 얘기다. 자신이 그 선상에 있다.
 위의 예에서 보자면 노동자 편인가, 신한국당 편인가 중에서 스스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100% 찬성하지 않더라도 51%를 넘게 지지하면 진영이 선택되는 것이다. 흡사 '시소'놀이에서 몸을 실어줄  곳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정치적 이념의 선택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기까지 선을 긋고 그 선 위에 스스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자리를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강준만 교수의 활동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다. 그가 욕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위에서 밑을 내려다 보며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에게 선상으로 내려와 제자리에 앉으라고 하니 좋아할 리가 없다.('양비론' 비판에 관한 한 강 교수의 저서보다 나은 참고 자료는 없으리라 생각된다-편집자 주)
 나는 적어도 정치평론이나 사회평론은 쓰고자 하는 사람은 좌표 분석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며 그 좌표 선상에 자신의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양비론에서 벗어날 수 있고, 평론에 필요한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Copyleft ©1997-2003 MyJ. All lefts are avail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