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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이 아니라 노 대통령이 사과해야

/ 안진걸 (한겨레, "왜냐면")

　

경찰이 한총련 의장 등의 체포영장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무슨 죄로 우리나라 공안검찰과 공안경찰들 참 발빠릅니다. 솔직히 얘기해볼까요 한총련이 있어야 먹고사는데 ‘합법화 및 수배해제 여론이 뜨거워’ 어쩔 수 없이 가만있다가 이제야 건수 하나 잡은 것 맞지요

그러나 이 건수는 100% 잘못 잡은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죠 저는 하도 5·18 시위에 대해 호들갑이길래 학생들이 기념식 단상이라도 점거한 줄 알았습니다. 아니면 최소 달걀이라도 던졌나 했죠. 뭐 선진국에서는 총리가 달걀을 맞아도 아무 일 없이 ‘해프닝’으로 넘어가도 한국에서는 ‘테러 행위’가 되는 이상한 사회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겨우 우발적인 평화시위였습니다. 그것도 길에서도 아니고, 집회시위 신고가 필요 없는 5·18 공원 안 추모행사 중 발생한 경찰과 우발적 대치였습니다. 그곳은 그냥 사람들이 항상 다중으로, 삼삼오오로 출입하던 곳이고 해마다 여러 형태의 추모행사와 집회도 하는 곳입니다.

행사장을 봉쇄했나요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다른 문들도 얼마든지 있었고, 사실상 한국 경찰의 행태를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시위대가 조금만 모여도 벌떼처럼 달려들어 무조건, 완전히 길을 가로막고 힘으로만 밀어내려고 하는 변함없는 경찰의 군사독재식 대처방식이 더 문제 아닌가요 만약에 학생들이 기념식장에 들어가서 뒤에서 피켓시위를 했다 …. 그것이말로 ‘오일팔스러운’ 것입니다.

또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경찰들은 평화시위를 보장하고 대통령은 학생들에게로 다가가 “충분히 시위 취지를 알겠다. 더 고민하겠다”고 잠깐이라도 대화했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오일팔스러운’ 것입니다. 대통령 경호 문제는 대통령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지 시민들의 출입까지 통제하고 학생들의 시위까지 막는 것이 올바른 경호는 아닙니다.

5·18 항쟁의 임자도 시민이고 기념 주체도 시민입니다. 그런데 시민들의 출입까지 통제했습니다. 이런 출입 차단 사태가 학생들의 시위로까지 이어지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사태 진상 파악조차 제대로 못 하고는 대미 굴욕외교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것인지, 수구·족벌 언론세력의 공격에 판단력을 잃어버린 것인지, 보수관료들에게 잘못된 보고를 받은 것인지 ….

이른바 ‘개혁인사’라고 하는 ‘노무현, 강금실, 김두관’이 한총련 비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어이없는 일입니다. ‘난동’이라니요 엄벌이라니요 한총련 합법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니요 무슨 난동이 있었습니까 고작 구호와 피켓뿐인 우발적 평화시위가 난동이라면 저는 수백번 난동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5월 광주의 학살을 주도했던 세력들이 오히려 5월 광주 정신을 들먹이며 한총련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낡고 썩은 일부 정치인들, 공안검찰, 조·중·동 족벌언론들입니다. 현재 이들은 한총련 수배해제 및 합법화 문제 해결을 무산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편승하는 노무현, 강금실, 김두관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망월동 참배, 추모행사 참여는 집시법 위반이 아닙니다. 추모 인파, 시위 인파가 많아서, 체증도 있고 차 좀 막히고 그러면 돌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무엇이 문젠가요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국민’은 국회에서, 주요 관공서에서 검문까지 당하면서 뒷문으로만 다니라고 강요당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뒷문이나 옆문으로 한번 다니면 안 되나요 또 시위가 벌어져 우발적 대치가 발생하여 시간이 좀 늦어졌다면 이것 역시 민주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시끄러운 사건이고, ‘민주적 해프닝’이며 표현의 자유입니다. 민주주의는 항상 시끄럽기도 하고 비용도 좀 드는 것 아닙니까.

이 소동에 대해서 한총련이 공식 사과 성명을 냈습니다. 쫓기는 처지에서, 항상 매도만 당하다 보니, 또 수배해제를 눈앞에 두고서 여론에 민감하여 제대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뭘 잘못한 것이 있어야 사과 성명을 내는 것이죠.(물론 한총련이 이만큼 유연해졌다는 긍정적 평가는 가능합니다.) 오히려 박수를 받을 일입니다. 청년학생들 중 누구라도 대통령께 대미 굴종외교에 대한 비판적 국민 여론의 일부라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5월 광주는 무엇입니까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한,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한 광주 시민들의 숭고한 항쟁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이 땅에서 군사독재 정권을 공공연하게 지원해 왔던 ‘미제국주의’의 실체가 폭로되었습니다. 5월 광주의 학살 전에 미국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을 적극 지지했고, 광주로의 군대 투입을 사전에 알면서도 이를 지지했고, 나아가 한-미 연합사 소속의 20사단까지 보내며 학살에 공모했다는 것은 당시 미국대사였던 글라이스틴과 미 국무부 고위관료들의 전보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5월 광주 정신은 미국에 당당한 한국이 되고 미국의 부당한 한반도 개입을 반대하자는 것이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완전하게 발전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5월 광주 정신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반민주적 사태인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철회 및 수배해제 하나 해결 못하고 있으면서 치욕적인 방미 굴욕외교에 대해서는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갑자기 한총련 사냥이라니요. 당신들 다시는 광주에 가지도 말고, 5월 광주를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합니다.

평화시위, 추모행사가 문제되는 사회는 결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이를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고 문제삼아 전원 처벌 방침을 그렇게도 빨리 발표하는 ‘공안꾼’들이 있는 한, 우리는 군사독재 못지않은 독재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앵톨레랑스(불관용) 세력들이 민주주의와 언론의 탈을 쓰고 판을 치는 사회입니다.

톨레랑스는 모든 것의 공존과 관용을 추구하지만 그 반대에 대해서만큼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앵톨레랑스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심각히 침해하는데, 그것을 넘어 그들이 마녀사냥까지 주도하고 있다니, 5월 영령들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입니다.

안진걸/ 경희대 엔지오대학원 석사과정
　